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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미애(수원)
어느 날!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자 남편을 꼬드겼다.
“여보! 우리 여행가자~~~”
회사일이 그리 바쁘지 않은 월요일 아침 일찍 딸아이가 학교를 가자마자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당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몇 년 전 부터 벼르고 벼르던 주산지를 볼 생각을 하며 보온병에 커피도 내려서 담고 과자도 담고 부푼 가슴을 안고 길을 떠났다. 주산지는 지난 2004년까지만 해도 극소수의 여행 작가나 마니아들만 은밀히 찾던 곳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인기여행지로 급부상했다. 조선 숙종 때인 1720년에 쌓기 시작하여 경종 때인 1721년에 완공한 길이 100미터 너비 50미터 정도의 조그만 호수지만 3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주왕산자락의 물이 모여져 농사를 짓기 위한 저수지로 쓰이고 있고 30여 그루의 아름드리 왕 버드나무가 물에 반쯤 잠긴 채로 서있는 광경은 신비감을 물씬 풍기며 수많은 사진가와 관광객들을 불러 모은다. 저수지의 수면이 거울처럼 잔잔할 때에는 수면의 위와 아래에 똑같은 형상의 나무들이 수십 그루씩 생겨난다. 주산지를 찍은 환상의 세계 같은 사진이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영화에 나오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었고 블로그에 사진솜씨를 뽐내며 저마다 주산지의 물안개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전에는 사람들에게 ‘청송’하면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청송보호감호소 또는 청송교도소였을 만큼 울진, 봉화군과 함께 경상북도의 대표적인 오지로 손꼽힐 정도의 외진 산중이었지만 우리처럼 지금은 찾는 이가 많아졌다. 주산지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올라가는 입구엔 그 유명한 청송 사과를 파는 아주머니들이 인심 좋게 사과를 반으로 딱 잘라서 산에 오르는 사람에게 먹어보라고 주신다. 청송 얼음골 사과가 상표처럼 되어있을 만큼 청송의 사과 맛이 끝내 준다. 청송은 강우량이 적고 햇빛이 풍부한데다 해발 250m이상의 산간지대여서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맛있는 사과를 생산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살이 단단하고 향도 짙고 당도가 높고 살 속에 박힌 꿀이 선명한 사과를 먹으면서 슬슬 올라갔다.
‘내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조금 이른 시기였을까?’ 사진으로 보고 늘 오고 싶어서 마음에 가득 품고 있던 주산지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른 아침에 물안개 필 때가 장관이라는데 ‘물안개가 없어서 그런가?’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어쩌겠어. 최고의 경치는 아니지만 흔하게 볼 수 있는 경치는 아니니 마음을 풀고 물속에 잠긴 왕버드나무와 뿌리째 드러난 나무들을 보며 안쓰러워하기도 하면서 저수지의 물이 많을 때 한 번 더 오자고 다짐하고는 사진을 찍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허전한 마음을 맛있는 청송사과 한 상자를 사는 것으로 대신 달래기로 하고 주왕산으로 향했다. 기암괴석이 우뚝 솟은 주왕산은 경북 제1의 명산으로 손꼽힌다. 또한 설악산 및 월출산과 함께 남한의 3대 명산으로도 꼽힌다. 주차장에 하루 5,000원의 주차비를 선 지급하고 국립공원 입구 매표소에서 문화재 관람료 2,000원을 따로 내야 했다.
주왕산은 조선 중기의 실학자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주왕산을 모두 돌로써 골짜기 동네를 이루어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는 산이라고 했을 만큼 울창한 숲과 기묘한 암석의 조화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이다. 높이 720m로 1976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주왕산은 전설이 참 많기도 하다. 아득한 옛날 중국 당나라에서 ‘주도’라는 사람이 반란을 일으키고 스스로 주왕이라 칭했다. 하지만 주왕은 뜻을 이루지 못한 채 토벌군에 쫓겨서 이곳 석병산으로 숨어들었다가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커다란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석병산은 그 뒤로 주왕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주왕산일대에는 주왕굴, 무장굴, 급수대, 대전사, 기암 등 주왕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주왕산의 대표적인 산행코스는 주방천계곡 길을 따라 대전사에서 옛 내원동까지 왕복하는 코스이다. 왕복9km쯤의 이 코스는 대략 4시간가량 소요된다. 등산로의 경사가 완만하고 주변 풍광도 아름다워서 산책하듯 가볍게 오르내릴 수 있다. 산을 오르는 길에 암석 설명과 전설까지 친절하게 기록한 표지판들이 세워져있다.
산을 오르다 만나는 급수대는 후사가 없이 죽은 신라 선덕여왕의 뒤를 이어 무열왕의 6대손인 김주원이 왕으로 추대되었으나 김경신이 내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즉위하지 못하고 왕위를 내어준 채 이곳으로 숨어들었다고 한다. 급수대 위에는 아직도 그의 궁궐터가 남아있는데 그 위에는 물이 없으므로 골짜기의 물을 퍼 올려 식수로 썼었다고 해서 바위 이름이 급수대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주왕산의 가장 대표 얼굴인 시루봉은 그 생김새가 떡을 찌는 시루 같아서 시루봉이라 불린다는데 옛날 어느 겨울날 도사가 이 바위 위에서 공부를 하고 있노라니 신선이 와서 불을 지펴 주었다는 전설이 있단다.
학의 둥지라는 뜻의 학소대에는 예전에 청학과 백학이 함께 살고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 사냥꾼이 백학을 쏘아 죽였다고 한다. 그 후로 홀로 구슬피 울며 주변을 맴돌던 청학마저 이곳을 떠나 자취를 감추었다고 전해진다. 가는 곳마다 전설이 있는 재미있는 주왕산이다. 표지판을 읽으며 올라가다 보면 제1폭포에 다다르는데 ‘와~ 이곳이 외국인가?’ 할 정도의 절경이 나타난다. 절벽사이에 나무다리를 놓아서 길을 만들어 놓은 배경이 저절로 탄성을 자아낼 만큼 너무나 웅장하고 멋진 곳을 만나게 된다. 이곳을 보고서야 청송에 주산지가 제일 인줄 알았던 내 생각이 엄청난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산지만 보고 멋지다고 생각하고 돌아갔더라면 땅을 치고 후회했을 것 같다. 한참을 머물면서 이곳저곳 카메라로 찍어대는 한 장 한 장이 모두 멋진 그림이 되는 곳이다.
제2폭포는 제3폭포와 갈림길에 있어서 제3폭포를 먼저 가기로 한다. 주왕산의 세 폭포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폭포가 잘 바라보이는 곳에 지어진 전망대는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곳이다. 조금 더 나아가니 등산하는 코스로 이어져서 산길로 접어드는 길이다. 그곳을 전환점으로 다시 내려오기로 했다. 입구부터 제3폭포까지는 걷기에도 편한 길로 만들어져서 등산이라기보다는 산책길처럼 편하면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바라보면서 걸을 수 있어서 더 없이 좋은 것 같다. 당일여행으로 와서 시간이 짧아 제2폭포, 주왕암, 주왕굴은 다음에 다시 와서 둘러보기로 하고 제1폭포에서 한참을 머물며 “좋다, 좋다.”를 연발하다 내려왔다. 저녁은 청송민속박물관 앞을 지나 청송읍을 통과하면 나오는 또 다른 청송의 명물 달기약수터에서 닭백숙을 먹기로 했다. 두세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닭 한마리가 30,000원이다. 철분함량이 높은 달기약수를 떠갈 수 있도록 통을 구비해 놓기도 했다.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 ‘톡!’ 쏘는 약수부터 한잔 들이켜고 전화로 미리 예약한 푹 고은 닭백숙을 먹기 시작한다. 달기약수가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야 어떻든 간에 고기가 쫄깃하고 맛이 좋다. 특이한 것은 죽에다 녹두를 듬뿍 넣어주는데 그 맛이 느끼하지 않으면서 담백하고 깊은 맛을 낸다.
이 닭죽은 다른 어디에서 먹는 것보다 풍미가 깊어 하나도 남김없이 배가 부름에도 다 먹고는 “아! 행복하다.”를 말했다 아름다운 여행을 시켜준 남편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센스를 날리고 수원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막 자랑하고 싶고 같이 가자고 이야기하고 싶은 여행지!
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곳. 그곳이 바로 청송 주왕산 국립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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