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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나로부터

작성자
김정희
작성일
13-12-19
조회수
858

변화는 나로부터


글 | 김정희(강서 11기)

2년 전 어머니학교를 알게 된 뒤 기회를 기다리며 사모하는 마음으로 등록하게 되어 너무 설레고 좋았다. 태우기 예식을 통해 상처를 태워버린다는 각오와 내면에 있는 깊고 깊은 쓴 뿌리를 해결해야겠다는 간절함으로 5주간의 여행을 시작했다.
내 안에 친정엄마로부터 받은 상처가 너무 커 그 부분만 해결 받으면 회복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첫 시간에 아버지에 대한 나눔의 시간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져 통제가 안 되었다. 유년시절 난 엄마가 서울에 올라와 일을 하셨기에 외가댁에 맡겨져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고 외삼촌에게 모진 폭행과 학대를 받아가며 성장을 했다. 어린 시절 가장 나를 아프게 하고 상처를 준 대상은 엄마라고 생각을 했는데 엄마가 아니라 외삼촌이었던 것이다. 이유 없는 폭행과 공포의 시간 속에서 떨며 지내온 나의 삶을 지우개로 지울 수만 있다면 외삼촌이라는 존재를 지우고 싶었다.
조건 만남으로 세상에 태어났고 딸이라는 이유로 아버지께 버림받았다. 그런 아버지의 얼굴을 본적도 없으며 나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어쩌면 외삼촌이 나의 아버지 같은 영향력을 끼치지 않았나 싶다. 이 모든 것들이 외삼촌의 영향을 받아 슬픔의 시간 속에 갇혀 고통스러워 하며 늪지 속에 빠진 삶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드라마 속의 주인공의 아버지가 꼭 외삼촌만 같았다. 임종을 앞둔 어느 날 외삼촌께서 나를 부르시면서 “정희야!! 미안했다 용서해 줄 수 있니?”하며 용서를 빌었지만 도저히 삼촌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내 어린 시절 온통 나를 괴롭히고 아프게 하며 힘들게 했던 당신을 용서해 달라고요? 어떻게 쉽게 용서란 말을 할 수 있을까?’
삼촌은 당신의 자식들한테는 한없이 자상한 아버지였지만 나에겐 두려움의 존재였다. 때로는 ‘나를 죽이지 않을까?’하는 두려움 속에 갇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적도 많았다.
더 이상 ‘용서’란 단어는 용납되지도 않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지나온 시간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더욱 더 앞을 가렸다. 어머니학교 예식에서 태워버리는 시간… 삼촌도 자기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없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불쌍한 존재인 것을 깨닫고 과거의 구덩이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몸부림을 치며 울었다.
‘그래 삼촌을 용서하자….’
삼촌과 엄마는 사이가 각별한 오누이 지간이었는데, 엄마가 결혼도 제대로 못하고 조건부로 자식을 낳아서 친정 집에 맡기고 서울에서 고생만 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너무 밉고 누나의 인생을 가로 막고 있다는 생각에 분이 나서 참을 수 없어 학대하고 폭행하며 나를 괴롭혔던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유년시절 제2의 아버지가 되어 준 외삼촌을 용서하기로 결심하고 떠나 보내고 나니 상처에서 자유케 되었다.
아버지께 편지쓰기와 자녀가 사랑스러운 이유 20가지, 남편에게 편지쓰기 숙제를 2주 동안 하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듯한 눈물이 계속 나오면서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기도했던 일들이 풀리지 않고 있었는데, 내 마음에서 이러한 모든 것들을 용서하며 떠나 보낸 후부터 회복의 문이 열리면서 가정의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내가 변화 되기 시작하자 우리 가족들은 사랑에 굶주린 자들처럼 스펀지가 되어 빨아 들였고, 평안함이 찾아오고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귀한 시간이 만들어졌다.
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이 글씨를 읽지 못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번 어머니학교를 통하여 기도제목으로 나누고 중보 하는 중 도현이에게 작은 변화의 불씨가 찾아왔다.
큰 아이를 낳고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그러던 중 둘째가 태어나면서 남편과 나는 둘째에게 온갖 사랑을 다 부으며 행복해 하는 순간 느닷없이 셋째가 생기면서 부담스러워 했던 것 같다.
부부의 사랑은 둘째에게 쏠리면서 막내에게는 제대로 된 사랑을 주지 못해 아이를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한 부모였다. 그러한 영향으로 아이가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숙제로 내준 세족식을 하면서 아이에게 정식으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면서 펑펑 울었다.
막내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도, 제일 싫어하는 사람도 엄마라는 말에 가슴이 미어졌다.
‘나 때문에 우리 아이가 이렇게 아팠구나! 사랑 받고 싶어 했구나!…’
아이를 꼭 안아 주면서 ‘엄마는 도현이를 너무 사랑한다.’고 말해 주었다.
이후 우리 아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장을 가다가 간판의 글씨를 읽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모르는 글씨가 나오면 물어보기도 하고 영어 단어를 형이랑 말하면서 주고 받고 “틀렸네. 맞았네.”이야기하며 공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귀엽고 예쁜 우리 막내 아들이 엄마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마음에 문을 닫고 모든 것이 정지된 상태였던 아이가 된 것이다. 사랑 받고 관심 받고 싶었던 아이를 방치하고 살아온 시간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이 모든 문제가 아이의 문제라고만 여겼는데 그게 아니라 엄마의 문제였던 것이다.
‘큰 아이는 어떤가…?’
사춘기 방황으로 학교 폭력과 폭행 절도, 본드에 빠져 살던 아이가 결국은 학교를 자퇴하고 선택의 여지도 없이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큰 아이를 보면서 이제 19살인데 꿈도 비전도 없이 그렇게 시간만 채우고 있는 것 같아 늘 안타깝기만 했다.
그렇게 보내던 어머니학교 2주차 큰 아이가 다가와 “엄마! 이제 꿈이 생겼어요. 제가 철이 없어서 속 많이 썩였지요. 죄송해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참고 견디며 이겨낼 거예요. 지켜봐 주세요.”하면서 눈물을 보였다.
월급날이라며 “아빠 계좌변호 보내주세요. 용돈 드릴게요.”라는 큰 아들의 말에 남편은 “이제 우리 아들 철들었네. 아들 걱정 안 해도 되겠군, 아들 잘 키웠어.”하면서 좋아한다.
나는 그 동안의 일을 회상하면서 한없이 울었다.
남편도 이유 없이 하루에 몇 번씩 전화를 하여 난 놀래서 “무슨 일 있어요?”라고 물으면 아니 당신이 보고 싶고 당신 목소리 듣고 싶어서, 사랑해, 다 표현 못하지만 당신이 내 옆에 있어주고 나랑 살아주고 우리 아이들의 엄마고 내 아내라는 것이 기쁘고 행복해. 그 동안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는데 참고 견디며 이겨낸 당신의 희생과 기도가 있었기에 우리 가족이 더 행복해진 거야, 고마워.”라는 말에 눈물이 났다.
가족의 발을 닦으면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 하는 우리 가족들…
너무 행복해 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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