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굉장한 문명사회를 이루었지만,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절망과 소외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육체적인 질병과 시간이 지나도 해결하지 못한 마음의 상처, 가정의 파괴, 영적인 궁핍함은 그 어느 때 보다 심해졌다.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많은 경우 이러한 고통의 자리에서 일어나고자 하는 회복에 대한 소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마가복음 5장의 혈루증 여인에게서 회복을 향한 강렬한 손짓을 보게 된다.
12년 동안이나 피가 멈추지 않는 병인 혈루증을 앓던 여인. 이 여인은 육체적으로도 고통이지만, 사회적으로 소외당하고, 종교적으로도 거절당한 상황이다. 문둥병처럼 사람들이 가까이 하지도 않았으며, 본인 또한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선을 긋고, 가족도 버린 여인이 아니었을까? 더불어 그 시대 상황에 따라 성전에도 들어갈 수 없는 질병을 가지고 12년 동안을 살아 왔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는데도 그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악화만 되어 갈 때 느끼는 마음의 상처는 얼마나 깊었을까?
힘들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했는데 오히려 점점 더 상황이 나빠져서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일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질병을 가지고 있어도 ‘고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면 견딜 수가 있다.
여인은 12년 동안 몸 고생, 마음 고생을 하면서 지칠 대로 지쳐 눈물도 말라버린 이때, 삶을 포기하기 직전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예수님만이 이 질병을 고쳐 주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흥분한 군중들을 뚫고 들어갔다. 아픈 몸으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자신의 인생을 걸고 들어간 것이다.
이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자, 기적이 일어났다. 순식간에 출혈이 멈춘 것이다.
예수님이 가던 길을 멈춰 말씀하셨다.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회복을 향한 강렬한 손을 내민 여인의 마음을 예수님이 읽으신 것이다. 여인의 회복을 향한 손짓은 예수님의 능력을 끌어낼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예수님은 여인의 몸만 고쳐주시는 것이 아니라 여인의 마음과 영혼도 회복시켜 주셨다. 예수님은 여인을 군중 앞에 나오게 했고, 그녀는 두려움에 떨면서 앞으로 나와 간증을 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몸을 치료하기 위해 부르셨다. 모두에게 버림받고 12년을 살아온 이 여인에게 하나님의 거룩하신 아들이 말했다. “딸아 내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평안히 가거라. 이제 앞으로 네 인생에 평안이 있기를 축복한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 앞에서 이 여인이 영육 간에 완전히 치유 받았음을 선포하셨다. “봐라, 이 여인은 치유 받았다. 이 여인은 이제 아름답고 깨끗하다. 그래서 이 여인이 더 이상 이웃들에게 소외당하지 않도록, 무시당하지 않도록, 너희들은 이 여인을 사랑해라. 인격적으로 대우해라.” 이러한 예수님의 선포가 ‘이웃과 단절된 관계의 회복을 염두에 둔 선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절망’이고, 다른 하나는 ‘소외’라고 한다. 절망과 소외로 가득 찬 이 세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혈루증 여인이 보여준 회복을 향한 강렬한 손짓일 것이다.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회복을 향해 손짓 할 때, 외면하지 않고 우리의 손을 붙잡아 주시는 주님!! 오늘도 ‘희망’이란 단어가 도무지 보이지 않아 절망과 상실감으로 몸부림 칠 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 말씀을 붙잡고 다시 일어서서 주님의 옷자락을 만져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