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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영옥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첫 제사 때도 제가 아버지께 편지를 써서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벌써 10여년이 지났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직도 그 이름만 불러도 눈물이 글썽거립니다. 전 주변에 당당하게 이야기하지요. 제가 이렇게 이 자리에 있기까지는 아버지의 칭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요.
1남 6녀의 막내로서, 엄마가 저를 지우려고 아버지 몰래 병원에 수술대 위에까지 올라갔는데 아버지가 아시곤 뛰어와서 저를 낳으셨죠. 50세에.
전, 늘 아버지에게 손녀 같은 딸이었답니다.
아토피로 고생하는 저를 업고 여기저기 용하다는 곳 다 다니시고, 제가 원하면 무엇이든 해주시려고 애쓰셨고, 많은 자식들 다 학교 보내느라 많은 나이에도 그렇게 애쓰시는 모습에 전 늘 가슴이 아파서…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여러 가지 애교와 어리광을 많이도 부렸지요.
어릴 때, 유치원에 너무 가고 싶었지만 키가 작아서 못 보낸다는 아버지 말씀에 전 “아버지처럼 크면 보내달라고” 철없이 이야기하였지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아버지를 아프게 할 때마다, 언니들이 엄마와 아버지를 섭섭하게 할 때마다 ‘난 저러지 말아야지’를 다짐하곤 하였지요.
‘늙으신 아버지가 저렇게 고생하시는데…’
제가 약을 먹고 죽게 되었을 때도 아버지는 최선을 다하여 저를 살리려 애를 쓰셨고, 그 뒤엔 저는 부모님을 위한 삶을 사려고 마음먹었답니다.
늘 “너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았는지 모르겠다.” “넌 사막에 갖다 놓아도 살아갈 수 있는 애야.” “네가 하는 일은 다 잘되고 옳을 거야.” 하시며 저에게 용기와 희망과 칭찬과 사랑을 듬뿍 주셨지요.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지고(저와 결혼하면 그 사람이 죽는다는 궁합 때문에) 미국에 유학을 가려고 하였는데… 아버지의 눈물을 처음 보고는 그만 포기하고 그날부터 선을 보게 되었던 거지요. 그렇게 해서 우리보다 어려운 집! 그래야 시집살이 안한다고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라야 어리광 피울 수 있다고 당사자만 똑똑하면 된다며… 지금의 남편과 결혼시키셨죠.
아버지의 꿈이 저를 결혼식장에 데리고 들어가시는 것이었잖아요. 사실 그때 전 정말 미국으로 가고 싶었지만 다 떠나고 저마저 두 분을 남겨두고 갈 수가 없었답니다.
아버지! 결혼 몇 일전, 전 이 결혼은 아니라고 몇 번이고 진지하게 이야기 드렸지만 두 분은 웃으시며 다 결혼 전에는 불안해서 그런 거라며 그냥 무시하셨죠. 헌데, 전 결혼식 날 식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이것이 꿈이어서 깨었으면 하였답니다.
이 결혼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요. 그러나 그 지옥 같은 결혼생활도 아버지에게 기대고 아버지의 웃으시며 자랑스러워하시는 모습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답니다. 제가 힘들 때면, 언제나 아버지에게 뛰어가서 다 큰 딸이 가슴에 안기어 기대곤 하였지요.
아버지는 늘 세상에서 성공한 것은 엄마를 만난 거라며 엄마에게 잘하셨고, 딸들에게도 욕 한마디 안하시며 키우셨죠.
전 모든 아버지가 모든 남편이 그러한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전 몇 년간 아픈 가슴 때문에 너무 힘들어 했고 매일 운전을 하면서 차 안에서 눈물을 흘리곤 하였죠.
왜 그리, 아버지와 다니던 곳이 많은지요?
왜 그리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음식만 보이는지요?
왜 그리 아버지의 빈자리가 큰 지요? 헌데, 정말 시간이 약인가봅니다.
이젠 이렇게 담담하게 아버지 이야기를 할 수가 있네요.
아버지! 요즘 제겐 새로운 아버지가 생겼답니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시지요.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늘 “하느님 별님 신령님”이라고 하셨고…
신은 하나인데 사람들이 나누어 놓았다고 하셨죠.
바로 하나님이시죠!
아버지!
지금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셨으리라 믿습니다.
아버지께서 하나님을 모르셨지만, 알지 못하셨을 뿐이지요. 만약 아셨다면 누구보다도 그 분의 귀한 자녀가 되셨을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딸이어서 정말 행복하였답니다.
그리고 정말 사랑으로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아버지!
-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는 막내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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