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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아버지, 막내딸이 할머니가 돼요

작성자
조청자
작성일
11-11-04
조회수
780

아버지, 막내딸이 할머니가 돼요

글 조청자(홍콩 3기)  

아버지, 세상을 떠나신 지가 벌써 28년이 되었네요. 아버지를 생각하면 전쟁이 끝나고 미군부대에서 흘러 나왔던 제너럴표 라디오와 동네 입구 만화방에서 빌려보셨던 잡지가 생각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손수 만들어 주신 책상도 있었지요.
가난이 싫으셨던 어머니는 아버지의 희고 잘생긴 얼굴에 끌려 시집을 오셨지만 오히려 고향에서보다 더 가난하게 사셨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8살 때 중풍으로 쓰러져서 17년을 앓으시다 돌아가신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는 고생이 많으셨지요. 셋째 언니가 중학교에 들어가고 아버지의 병이 점점 중해지셨어요. 제가 중학생이 될 즈음 학비 때문에 어머니가 작은 밥집을 시작하시게 되면서 언니와 저는 아버지와 한방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한쪽이 마비되어 불편하신 몸으로 화장실에서 쓰러지신 후에 방에서 대소변을 해결하셔야 했고 그 때까지도 담배를 피우셨던 아버지의 냄새 때문에 밖에 두었던 교복은 입을 때 한기가 느껴졌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 주셨던 어머니의 섬김이 없었다면 아버지를 미워했을 거예요. 우리 딸들은 어머니 때문에라도 아버지를 미워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로부터 탈출하고 싶었습니다. 고등학교 담임선생님께서 어려운 형편을 아시고 야간 교무실에 급사로 취직을 하게 해주셨을 때 제일 좋았던 건, 아침에 집에서 나오면 저녁 10시가 넘어서 집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찍 결혼을 하게 된 것도 아버지를 피하고 싶었던 마음이 커서였습니다.
이제 제가 시어머니가 되었습니다. 10월이면 할머니가 됩니다. 아버지 나이가 되어 세상을 살아 보니 아프신 아버지는 얼마나 힘이 드시고 외로우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때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고 나를 부르실까봐 눈도 마주치기 싫었습니다. 게으르고 병약한 아버지 때문에 고생하신 어머니가 아버지 병 수발을 위하여 애쓰시는 것에 대한 분노도 있었습니다. 아버지. 환갑날 사진관에서 제가 넥타이를 매드렸을 때 울먹이시던 모습, 발톱 깎아달라고 손톱깎이를 던지시던 모습, 결혼식 때 아버지 대신 사촌오빠 손을 잡고 들어온 저를 보고 우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것이 사랑의 표현이었는데 그때는 몰랐습니다. 말씀이 어려워 울음으로 대신하셨고 사랑하는 딸에게 발을 내미셨던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아버지를 핑계로 늦게 들어오던 막내딸이 결혼을 하게 되자 좋아서 흐뭇하게 바라보셨던 그 눈빛도 읽어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제가 어떻게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었을까요? 바로 제 남편으로부터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말도 없고 표현도 잘 못하는 사람이 딸아이의 재롱을 보던 그 행복한 얼굴, 아파서 잠 못자는 딸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하고, 손 놓으면 깰세라 앉은 자세로 딸을 재울 때, 어린 시절 아버지가 아픈 저를 업고 병원에 가셨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또 담배 심부름을 하면 거스름돈을 주시며 활짝 웃으시던 얼굴도 함께요. 그런데요, 아버지, 그거 아세요? 혼자 교회를 다니던 저를 때리기도 하시고 성경책을 아궁이에 던지셨지만 그렇게 저를 만나주시고 사랑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몰랐다면 아직도 아버지가 저를 사랑하셨다는 걸 몰랐을 거예요. 그렇게 힘들게 어두운 시절을 보냈지만 아버지가 사랑하신 어머니는 아직도 정정하시고 항공사 다니는 막내 사위 덕에 비행기도 많이 타보셨답니다. 딸과 사위, 손자 손녀의 사랑을 받으시면서 행복하게 살고 계십니다. 어려서 앓은 열병 탓으로 조금은 모자라 걱정하셨던 작은 언니는 착한 사위들이 잘 섬겨주고 있어요. 제일 많이 아파서, 그리고 정이 그리워 징징거리던 막내딸도 잘 살고 있거든요. 아버지, 저에게 청자라는 이름을 주시고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막내딸 청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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