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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이제야 찾게된 엄마의 사랑

작성자
김금의
작성일
16-04-28
조회수
597

이제야 찾게된
엄마의 사랑


글 ● 김금의(구리 남양주 4기)



내가 나가는 교회에서 어머니학교를 연다는 정보를 듣고 나는 나이가 많아 해당이 안 된다고 생각 했다. 그러나 교회주보에 계속하여 정보가 실리고, 아직 인원이 차지 않았다는 말들이 나의 귀에 들리며 어머니학교에 대한 관심이 떠나지 않아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 나이에 누가 어머니학교에 입학하는 사람이 있겠나?’ 나 혼자 젊은 엄마들 틈에 어울리지 않을 분위기를 상상해 보았고 또 설령 내가 어머니학교를 나온다 해도 오랫동안 굳어져 있는 내가 변할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가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많은 갈등 속에서 어머니학교에 입학하기로 결단했다. 왜냐하면 내가 얼마를 살지 모르지만 마지막 이 세상을 떠날 때 “그때 어머니학교라도 다녀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잘해줄걸 ”하며 후회 할것 같아 용기를 내었다.
어머니학교에 입학하겠다는 나에게 남편은 “당신이 할머니학교에 입학해야지 왠 어머니학교냐”고 한 마디 했고 딸아이도 말렸으나 가족들의 반대를 뒤로 하고 드디어 어머니학교에 입학했다. 어머니학교는 내가 상상 했던 그대로 할머니가 입장하기엔 부끄러운 분위기였다. 결혼식장 이상으로 온통 분홍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모든 장식이나 기구 하나 정성스럽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 나는 얼굴을 붉히며 간신히 테이블에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딸 아이 또래가 많았다. 나는 5주를 어떻게 지낼까 걱정이 되었으나 마침, 내 또래의 학생이 한분 계셔서 정말 반갑고 다행이었다.
나는 어머니학교에 큰 기대를 하며 입학했다. 입학만 하면 내가 모르는 많은 정보와 지식을 얻어 머리로라도 아! 그래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첫날 강의시간 멍하게 졸기만 하고 오전 10시 부터 오후 3시까지 오래 앉아 있었던 탓인지 허리도 다리도 아파 많이 피곤했다. 그런데 집에 와서 누워 있는데 내 머리에 떠도는 두 단어가 있었다. “실 실 웃 기”, “분홍색” 여태까지 살아온 나와는 정 반대되는 단어들이었다. 나는 어머니이기 보다 43년간의 교사 생활에 젖어 아무 주관 없는 사람처럼 실실 웃어 본적은 없었고 항상 옳고 그름을 말해 바르게 키우는 것이 잘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붉은색이나 흰색이냐를 따지는 가치관으로 살았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분홍색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 어머니학교에서는 엄마는 실실 웃어라 하고 학교의 분위기는 분홍색 일색이어서 당황스러웠다. 한편, 그동안 자녀들이 내게 던진 말들이 생각났다. “엄마가 내 엄마 맞느냐”고 “엄마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자녀들은 내게 불만을 터뜨렸고 나는 그런 자녀들을 이해 할 수가 없었는데 나는 그동안 엄마로서 잘못 살아온 것이 분명함을 깨달았고 내 자녀가 엄마의 푸근함을 느끼지 못하고 삭막하게 자랐음을 알고 매우 가슴 아프고 부끄러웠다. 사실 나는 엄마가 병마와 시달리다 내 나이 5세에 세상을 떠나 엄마의 사랑을 알지 못했고 내가 자녀에게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또 깊은 사랑이 우러나지 않았다.

나는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께 편지를 쓰고 싶었다. 왜냐하면 70평생을 살면서 나는 엄마가 없다고 생각하고 28세의 나이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잊고 살아 죄송한 마음이 들어 이 기회에 엄마를 생각하며 모녀의 관계를 살리고 싶었다. 사실 엄마에게 편지를 쓸려니 할 말이 별로 없어 어머니의 동서 숙모님이 내 어릴 때 들려주신 엄마에 대한 말을 기억하면서 편지를 쓰다 나는 “엄마”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딸을 두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 너무 가슴 아파 병마에 시달리며 고통 중에 있으면서도 방문을 열어 놓고 내 모습에 눈을 떼지 않았던 엄마! 딸 시집갈 때 돼지와 재봉틀 팔아 혼수 마련해 주라고 간곡히 부탁했던 엄마. 돌아가시기 전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내가 행복하기를 소원하며 애원한 엄마를 기억하며 나는 내 엄마를 찾아 엄마의 애절한 사랑을 느끼며 울면서 숙제를 했다. 그동안 숙모님이 내게 엄마의 말을 들려주었지만 나는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으며 엄마 없는 내 운명을 원망하기만 하며 살았다. 그래서 나에게는 엄마도, 엄마의 사랑도 없었다. 오직 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칭찬 받는 것, 행동을 바르게 하고 공부나 직장 생활에 열심인 것이 우선이었고 그것이 전부였는지 모른다. 또 가족들에게 마음을 읽어주고 이해하는 일보다 문제를 해결해 주는 가정생활 문제 해결사에 불과했다. 또한 33세에 주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가족을 사랑해 보려고 했지만 오히려 자녀들이 엄마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 고개를 돌렸다.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엄마! 그 귀한 사랑을 내가 진작 품고 알았더라면 나도 내 자녀에게 조금이라도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었을까! 라고 상상해 본다. 앞으로의 내 생활이 얼마나 바뀔지 의심스럽지만 실실 웃고 분홍색 삶으로 살아보려고 한다. 그리고 “지랄 총량의 법칙”은 자녀나 손주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어 실실 웃는 생활이나 분홍색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수많은 어머니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며 이 땅에 사랑의 열매가 열리도록 수고하시는 모든 스태프들의 노고에 감사 드리며 그 손길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어 이 모든것을 계획하시고 운영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감사를 드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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