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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낯선 땅에서 만난 오아시스

작성자
000
작성일
11-10-18
조회수
643

낯선 땅에서 만난 오아시스
 

글 000(켄사스 1기)
 

가난한 시골에서 부모님을 도와 집안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를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아무것도 모르고 집안일을 돌보던 저는 사춘기가 되면서 배우지 못한 자격지심에 몸서리치는 부끄러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말쑥하게 교복을 입은 여학생을 보면 마주하지 못하고 숨어 버리는 예민한 사춘기 소녀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 하였습니다. 이런 저는 자격지심으로 마침내 고향을 등지고 방황의 생활에 빠져들었고, 어둡고 힘든 삶 가운데 내 자신의 비참함에 세상을 저주하게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을 떠나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아 자살을 시도하였으나 그것도 실패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보려고 주인집 할머니를 따라 절에도 가고, 무당을 찾아 굿도 해 보았지만 저의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 저는 사회에서 발붙일 틈도 찾지 못했습니다. 고통과 번민의 비참한 나날 속에서 새 삶을 갈구하며 지내던 저는, 배움이 없어도 천대 받지 않을 것 같은, 아무도 모르는, 창피할 것 같지 않은 미국을 생각하게 되었고, 1997년 25세 되던 때에 한 미군을 따라 낯선 미국 땅에 오게 되었습니다.
영어도 모르고 배움도 없는 저였지만 아무도 내 배경을 모르고 학력을 묻지 않는 미국은 저에게 희망이었고, 새 삶을 개척할 수 있다는 꿈을 심어 주었습니다.
한국 사람이 살지 않는 미주리의 조용한 시골에서 아들, 딸 낳으며 편안하게 사는 것 같았으나 예상치 못한 시련은 미국이라고 비켜가지 않았고, 남에게 말할 수도 없는 서러운 처지가 오히려 가혹하게 다가왔습니다. 남편은 월남전 후유증으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그런 남편으로부터 이유도 없는 차가운 시선과 냉대로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외로움과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국땅에서 겪는 서러움과 답답함은 한국에서 겪었던 고통보다 몇 갑절이나 제겐 더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중 미국에 오기 2주 전 이웃집 할머님께서 알려 주셨던 예수님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없었지만 미국 교회를 찾아 열심히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러나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 미국교회에서의 신앙생활은 답답한 제 마음을 위로해 주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 마음을 아시고 한국에 계신 아버지의 위중한 병환으로 저로 한국을 방문하게 하셨고, 한국에 머무는 동안 교회를 찾아다니며 진리의 주님을 만나게 되었고 성령님의 체험으로 제 삶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 오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다시 돌아온 저는 열심히 기도하며, 일하며, 가정에 충실하며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환경은 제가 한국에 다녀오기 전과 변함이 없었지만 제 마음은 기쁨과 평안이 넘쳤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께서는 제게 배움의 기회를 갖고 공부를 하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젊은 나이도 아닌 나이 40에 초등학교 공부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였지만“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는 말씀으로 용기를 갖고 시작하였습니다. 그동안 남편의 건강은 눈에 띄게 좋아졌지만, 저와 어린 남매를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가 버렸습니다. 그 때 저는 남편에게 버림받고 팽개쳐진 여자로서 처량하며 뼈를 깎는 것 같은 아픔과 슬픔을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만을 의지하며 어린 두 남매를 데리고 식당에서 일을 하며 공부를 계속 하였습니다. 우선 고등학교 졸업자격증을 얻기 위해 밤마다 거의 뜬눈으로 영어사전을 찾아가며 공부를 하였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아이들 학교에 데려다 주고, 일하러 가고, 다시 아이들을 학교에서 데려다 놓고, 일하러 가고, 하루 24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언제 잠을 자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만을 굳게 믿고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하지만 계속 낙방하여 일곱번째에 합격 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며 시험을 치를 때마다 떨어지니 낙심도 원망도 많이 하였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도우심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일곱 번째 시험에서 합격한 후에 미주리 주에 있는 한 Bible College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고국에서 초등학교 4학년 밖에 공부하지 못한 제가 마흔이 넘어 여자 혼자 어린 남매를 키우며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고 대학생이 되었다는 것이… 그때 저의 기쁨은 이 세상의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이런 기쁨도 잠시, 계속되는 대학에서의 공부는 제 짧은 지식으로는 너무도 어렵기만 하였습니다. 아이를 돌보고 직장에서 일을 하고 밤마다 책상에서의 씨름, 가정은 엉망이 되어 갔고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치기만 하였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의 손길이 없었다면 도저히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어려운 환경에서도 주님은 끝까지 함께 하시며 대학 4년의 과정을 마치고 학위를 취득하게 하셨습니다. 졸업식날 밤에 저는 홀로 어두움 속에서 졸업장과 가운과 사각모자를 품에 안고 한없이 울며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동안 학비를 벌기 위해 봄에는 산에 가 고사리 꺾어와 삶을 때마다 냄새가 역겹다고 짜증내던 딸아이의 모습,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이 시간에 쪼들려 공부하고 사는 엄마를 이해 못해 반항하며 가슴 아프게 하던 많은 일들, 주위에서 수군거리며“누구 엄마가 대학교에 다닌데,
한국에서 초등학교도 졸업 못했다는데… 아마 중간에 포기할 거야….”
이런 사연들이 주마등같이 제 머리 속을 스쳐 갔습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 동안 제 인생 가운데 겪었던 수많은 어려움과 사건들과 경험들, 이 모든 것이 앞으로 주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 준비했던 시간들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미국 땅에 지난날의 나처럼 많은 시련과 아픔을 가지고 어렵게 살아가는 나의 이웃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회복되는 일에 사용되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나의 인생의 지난날들이 헛되이 낭비되지 않는 축복의 통로로 사용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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