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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계신 아버지께 안부를 여쭙니다. 아버지께서 천국에 가신 지 열여덟 해가 되어 가네요. 사춘기 때 아버지의 외도를 알고 속상해하시는 엄마를 보면서 아버지를 많이 미워하고 원망했어요. 엄마는 숨기셨지만 두 분이 작은 소리로 말씀 하시는 걸 다 들었거든요. 막 소리 지르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때의 저는 그럴 용기가 없어 말없이 아버지를 미워했지요. 막내라고 예뻐해 주시는 제가 말수가 적어지면서 쌀쌀하게 대했는데 눈치 못 채셨어요?
어려서 친구들 아버지는 농사지으며 검게 탄 얼굴에 촌스러운데, 아버지는 제가 봐도 잘생기셨고 흰 피부에 멋쟁이이셔서 자랑스러웠어요. 그리고 먼 동네 어른들도 찾아와 아버지께 상담하고, 아버지가 해결해 주시면 주위에서 아버지를 변호사 판사라고 해서 정말 그런 줄 알았어요. 아버지는 중학교 중퇴라는 학력이셨어도 그 당시 시골이라는 환경에서는 나름 고학력자이셨다죠. 장점이 많은 아버지셨는데 엄마와 저희한테는 왜 이리 큰 상처를 남기셨을까요. 저는 모든 아버지들이 하루는 집에서, 하루는 밖에서 주무시는 줄 알았어요. 그만큼 아버지는 외박을 자주 하셨고 엄마가 손등을 깨물며 우시는 걸 몇 번 봤지만 그것이 아버지의 외도 때문인 걸 안 건 세월이 흐른 뒤였어요.
저는 남학생한테 편지가 오면 아버지한테 들킬까봐 읽지도 않고 아궁이속에 태워버렸지요. 그만큼 엄격하셨던 아버지가 딴 살림을 차려 자식까지 두었다는 충격의 상처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어요. 그 후에도 아버지는 두 집 살림 하시느라 바쁘셨고, 약간 심하지 않은 뇌졸 증에 걸려 집에만 계셨지요. 그런 아버지를 또 엄마는 정성껏 돌보시고, 그 모습을 보며 엄마처럼 안 살겠다고, 아버지 같은 사람한테 절대 시집 안 갈 거라고 다짐했지만 저도 그와 비슷한 삶을 살게 되었지요. 그래도 다행인 건 아버지께서 새벽 운동 길에 교회에 가셔서 목사님께 "저 같은 죄인도 예수 믿어도 되느냐"고 물으셨다지요. 예수님께 회개하고 영접한 후 신앙생활 하시다가 천국 가신 거예요. 저도 예수 믿고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그립고 보고 싶은 마음으로 바뀌었지요.
저희 아이들이 버릇없이 굴 때면 제가 말한답니다. "너 외할아버지 계셨으면 혼났다."라고요. 아버지 나중에 천국에서 만나면 아버지께 못 했던 좋은 기억들, 저희 아이들 이야기 많이 해 드릴게요. 살아계실 때 더 많이 찾아뵙지 못하고 잘해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천국에서 만날 수 있으니 다행이에요. 참, 엄마도 요양원에 계시지만 치매인데도 주기도문, 사도신경, 주민번호, 시골집 주소 등은 달달 외우세요. 잘 계시고요.
막내딸 샤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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