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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연령대별로 꾸는 꿈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14-12-05
조회수
991

연령대별로 꾸는 꿈

정리 | 편집부

꿈은 나이를 불문하고 모든 이의 가슴을 뛰게 한다.
꿈이 있어 행복한 이들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살펴보자.



유년의 꿈 28층 아파트
강주성(8세)

나의 꿈은 어른이 돼서도 엄마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것이다.
지금 우리 집은 21층이다. 난 더 높은 층의 집이 좋은데, 우리 엄마는 두 번 다시 이사는 못 가시겠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 몰래 누나와 우리 아파트의 제일 높은 28층에 가보았는데, 하늘과 너무 가까워서 비행기를 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28층에 살면 하루 종일 비행기를 타고 날고 있는 기분이 들 것 같아 마음에 쏙 들었다. 엄마는 이사를 안 가시겠다고 하니 28층에 살면서 매일 엄마 집에 놀러가야 겠다.


10대의 꿈 고딩 하영이의 버킷리스트
한하영(17세)

1. 나랑 맞는 사람과 만나 행복하게 살기 반드시 기도해야 할 제목임.
2. 세계 여행 누구나 꿈꾸어 보았을 것이다.
3. 장기 선교 장기선교를 목표로 잡으면 최소한 단기선교는 갈 테니까.
4. 죽기 전까지 6개 국어 6개 국어에 도전하면 3개 국어는 할 수 있을 테니까.
5. 기부 금전적인 기부든 재능기부든 나한테 있는 것 나누기.
6. 세계를 무대로 살기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서 하나님 영광 위해 살기.




 


10대의 꿈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약손으로
김하은(17세)

6살부터 시작한 발레는 나에게 즐거움과 좋은 친구를 주었다. 대회에서의 수상은 어린 나의 꿈이 되어 발레리나를 동경하게 했으나, 12살 생일선물은 그 꿈을 조금씩 잊게 하였다. 보리(생일선물로 받은 강아지)가 맞벌이하는 엄마의 빈 시간을 채우는 친구가 되었다. 보리의 목욕이나 귀청소가 쉽지 않았으나 보리와 교감하는 시간이었다. 엄마는 “네가 하면 보리가 편안한가 보네. 하은이 손이 약손인가?”하시며 칭찬하셨다. 고래도 춤추게 한 칭찬은 내 안에 있는 동물에 대한 사랑을 발견하게 하였다. 버려지거나 아픈 동물, 안락사 당하는 동물들에게 보호자가 되고 싶고, 치료자가 되고 싶다. 희미해진 발레리나의 꿈이 수의사로 선명해졌다. 올해 나는 고등학생이 된다. 학업에 열중해야 하며, 관련학과의 진학정보도 찾고, 유기견 봉사도 알아보며 내 안에 자라나는 꿈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채우겠다.

 


20-30대 청년의 꿈 대학 새내기의 꿈
김하연(20세)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빠가 취미로 색소폰을 부는 모습이 재미있고 신기 했다. 중3때 전공하기로 결정을 했는데, 색소폰을 부는 내 모습이 진지하고 멋지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잘 선택한 것 같다. 악기를 공부하며 힘들때도 있었다. 고2 무렵 마음이 안 잡히고, 연습도 하기 싫더니 결국 슬럼프에 빠지게 되었다.
수시가 임박했을 때도 연습은 하기 싫고, 뜻대로 되지도 않아 울면서 연습했었다. 그렇게 연습해 서울대 수시를 잘 봤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떨어지고 말았다.
가장 행복했을 때는 실수가 있었기에 기대하고 있지 않았는데, 수시 합격통보를 받았을 때 정말 기뻤다.
고등학생까지는 내 의지와 상관없는 삶을 산 것 같다. 하지만 대학생은 내가 결정하며 살아야 하는 때가 된 것 같다. 사실 목표가 대학이었기 때문에 이제부터 목표를 책임감 있게 다시 세워야 할 것 같다. 대학생이 되면 혼자 나가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의 기도제목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 잘하고 항상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셨으면 한다. 장학금도 받고 싶고, 보조개 수술도 하고 싶고, 살도 7Kg 빼주셨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계획은 중학생 정도의 아이를 레슨하고 싶다. 그 아이가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 함께 해보고 싶다. 그리고 머리를 와인색으로 염색하고, 살을 뺀 후(ㅋㅋ) 미팅을 해보고 싶다. 미팅에는 자기의지가 확실하고, 유머가 있으며, 체크무늬 카디건이 잘 어울리는 친구가 나왔으면 좋겠다. 또한 악기를 배우기 어려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교회서 아동부 교사도 하면 참 행복할 것 같다.

 


20-30대 청년의 꿈 음악은 하나님 사랑을 보게 하는 통로
김지호 (22세. 대학생)

어린 시절의 나는 음악하는 목사를 꿈꾸었다. 22살인 지금은 세계적인 싱어송 라이터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기를 꿈꾼다. 책을 통해 만난 링컨 대통령과 사랑을 실천하는 뮤지션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는 나의 꿈에 큰 영향을 주었다.
2009년 SBS 『스타킹』 출연 이후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주님 안과 주님 밖에 사는 사람들을 발견하였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필요한데, 그 사랑을 체험하는 통로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비전이 되었다. 비전을 이루는 그 날에 세상 사람들이 “아, 이 사람은 주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고, 주님은 정말 살아 계시는구나.”라는 말을 듣고 싶다. 그리고 그들이 주님께 돌아와 감사하며 찬송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으면 좋겠다. 현재 대학을 다니며 『The blind』라는 그룹으로 활동 중인 나는 비전을 이루기 위한 계획들을 실천하려고 한다.



20-30대 청년의 꿈 배우자를 위한 기도
오아랑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게 ‘배우자를 위한 기도’로 신앙이 일순위이며 사람의 진실함, 인품과 됨됨이를 위해 기도해왔다. 서른이 가까워 오면서, 나의 배우자에 대한 기도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불투명한 미래가 아니었으며 확실한 실체가 있는 ‘그’였다. 나의 미래의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은 내 이상형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는 것이다. 그의 신앙, 건강(육체, 영), 그의 가족, 비전을 위해, 그리고 나를 만나 나와의 신뢰를 위해. 언젠가, ‘그’를 대면했을 때,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사람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 것 같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


40대가 꾸는 꿈 40대 대표선수 엄마
익명

40대….
40대에는 내가 꿈을 꾸기보다는 자녀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강요하는 나이인 것 같다. “너는 꿈이 뭐니? 아직도 꿈이 없니? 장차 뭐가 되려고 그러니?” 아이들을 다그친다. TV 광고에 이런 내용이 있다. “우리 애는 꿈이 없어.”
“엄마는… 나도 꿈꾸고 싶다고. 하지만 학원 가랴, 숙제하랴, 꿈꿀 시간이 없는 걸.” 꿈은 누가 꾸라고 강요해서 꾸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 스스로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발견해서 꾸어야 하는 것인데 ‘어릴 적 나는 무슨 꿈을 꾸었을까?’ 생각해보면 나도 그다지 큰 꿈을 꾸진 않았던 것 같다. 학교에서 적어 내라고 하는 설문지에는 고작 해봐야 간호사나 현모양처가 전부였다. 간호사는 되지 못 했고 남은 것은 현모양처인데 아직은 가능성이 있다. ‘왜? 40대니까.’
지금까지 아이들에게 현명한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남은 40대 50대 동안에 현명한 어머니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 꿈을 꾸어 본다. 지금까지 남편에게 착한 아내가 아니었다면 ‘지금부터라도 착한 아내로 내 인생의 반려자인 내 반쪽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꿈을 꾸어 보는 건 어떨까?’ 사실 이 글을 적기 전까지 ‘꿈? 이 나이에 무슨 꿈….’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어릴 적 꾸었던 꿈이 하찮아 보이지만, 평범해 보이지만 정말 어려운 과제였다는 걸 깨달았다.
‘현모양처’ 이보다 더 실현하기 어려운 꿈이 있을까. 이보다 더 보람찬 꿈이 있을까. 오늘부터 나는 꿈을 꾼다. 지혜로운 엄마 착한 아내가 되기로….
아자 아자!!! 이 땅의 40대 어머니들 파이팅!!!


50대가 꾸는 꿈 하나의 따뜻한 밀알이고 싶다
유재선(50대, 세무법인 부강 대표 세무사, 강남대학교 세무학과 겸임교수)

한 해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새로운 계획을 세우나, 나의 계획은 한 박자 느리다. 13월의 월급을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갑절의 부지런을 떨고, 이제 한 숨을 돌린다.
오십을 넘어선지 몇 해, 참 바삐 살아왔나 보다. 어린 시절 달동네에 살면서 느꼈던 부조리에 늘 가슴이 답답했던 나에게 어머니는 ‘꿋꿋함과 성실’의 대명사이다. 지독한 가난에도 미소를 잃지 않으며 최선을 다하는 어머니의 삶은 내가 꿈을 가져야 하는 이유였으며, 『성공하여 사회를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자』는 비전을 갖게 했다.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직무에 임하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공부하였다.
37세 늦은 나이에 세무사 시험에 합격, 39세에 대학원 진학, 그리고 48세에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사람들은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었다.” 이야기하지만 난 여전히 꿈을 꾼다. 그 꿈은 각박한 세상에서도 사람의 구원을 믿으며, 이를 위한 하나의 따뜻한 밀알의 삶이다.
이제껏 나를 지탱해 온 『어려움 앞에서 물러나지 않는 사람, 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란 좌우명은 지금도 ‘ing’이다.
오늘도 역삼동 사무실과 대학에서 내 인생을 담아내고 있다. 지식적 앎이 아니라, 세무의 현장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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