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고 행복한 가정들이 만드는
더 좋은 사회 더 좋은 세상
인생에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을 꼽아 보라면 꿈이 성취된 순간보다 성취될 것 같은 희망이 보이는 순간이라고 합니다. 어릴 때 소풍 날 보다 소풍 전 날의 설렘이 크고, 운동회 날 보다 전 날의 기대감이 더 넓었던 기억을 생각하면 공감이 될 듯합니다. 인생에 꿈을 갖고 한 걸음 한 걸음 여기까지 달려왔던 순간들이야말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아니었을까요. 성취된 꿈에만 행복의 가치를 부여하면 좌절된 꿈으로 인해 불행한 인생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태반이겠지만, 꿈을 성취해 가는 과정 자체에 행복의 가치를 부여 한다면 포기하지 않고 있음에, 여전히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에 여전히 행복한 사람이라 느낄 것입니다.
꿈을 성경적 풀이로 바꾸면 “소망”혹은 “희망”이라 말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영국 극작가요 평론가였던 세퍼는 “소망과 희망을 가진 자는 이미 미래에 사는 자”라 했고,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희망은 강한 용기이며 새로운 의지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불행을 고치는 약은 소망뿐”이라 했고,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는 “희망은 가난한 자의 빵”이라 했습니다. 이렇듯 꿈은 소망을 갖게 하고 그 소망은 우리를 이끌어 가는 힘이 되는 것이죠. 어제의 꿈이 모여 오늘이 되고 오늘이 쌓여 내일을 만든다 했습니다. 꿈을 포기하지 않는 한 내일은 희망인 것입니다.
꿈을 향해 가면서 행복 했고, 꿈을 이뤄 행복 했던 사람 중 성경의 대표주자는 요셉이 아닐까 싶습니다. 창세기 요셉의 이야기 중 눈물 흘리는 장면이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별 후 온갖 고생과 어려움 속에서 꿈을 이룬 후 형제들과 상봉하던 순간, 아버지 야곱의 임종, 그리고 아버지 야곱 임종 후 자신들이 한 행위가 두려워 용서를 구하는 형님들 앞에서 요셉은 울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모두가 꿈을 성취한 이후 감격과 감사, 용서의 눈물이었던 것 같네요. 꿈을 이루기까지 요셉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이뤄가는 과정 그 자체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행복을 느끼고 삶의 의미를 가졌기에 요셉은 절망보다 희망을, 슬픔보다 기쁨이 컸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바울 사도도 이러한 마음으로 빌립보서 3장 12절에서 자신의 꿈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다 얻었다거나 다 이루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다만, 놀랍게도 나를 붙드신 그리스도를 붙잡으려고 내 길을 갈 뿐입니다.(메시지성경)”
꿈을 찾고 꿈을 향해 가되 방향이 다르지 않고 방법이 옳은 길이라 한다면 之-갈지, 행보도 나름 아름답지 않을까요. 단조롭고 획일화된 누구나 꾸는 꿈이 아닌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별세한 어느 작가의 책 이름처럼 소망을 갖고 여전히 가야할 길을 계속하고 있는 인생이 참으로 행복한 인생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삶이 흔들리는 건
아직도 흘릴 눈물이 남았다는 건
내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증거니깐
가끔씩은 흔들려 보는 거야
하지만 허물어지면 안돼
지금 내게 기쁨이 없다고
모든 걸 포기할 필요는 없어
늦게 찾아온 기쁨은 그만큼 늦게 떠나가니까
‘가끔씩 흔들려보는 거야’
-박성철 님이 지은 시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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