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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아빠의 빈자리

작성자
전현숙
작성일
14-12-05
조회수
927

아빠의 빈자리

글 | 전현숙(경민 18기)



아빠께
아빠! 잘 지내고 계신가요?
1남 2녀의 둘째딸로 태어나서 아들이기를 많이 원했던 가족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또 딸이야?”하며 제가 재롱을 부리거나 똘똘하게 무엇을 할 때면 “저게 아들이었으면….”하는 소리를 참 많이 듣고 자란 것 같습니다. 제가 3살 때 남동생을 보기 전 까지 말이에요.
철이 들면서 사업의 실패로 점점 예민해지고 무능해지는 아빠를 보며 자라야 했고 노력하기 보다는 점점 엄마의 어깨만 무거워지고 집안의 중요한 일에는 늘 부재했던 아빠로 인해 아빠에 대한 신뢰는 점점 무너지고 있었죠.
그렇지만 아빠이기에 끊을 수 없는 천륜을 어기지 못하고 의무감으로만 대했던 것 같네요. 다른 형제들은 그런 아빠를 싫어하는 내색을 했지만 저마져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아빠와 좋은 관계인척 하며 지내는 저도 마음으로는 많이 힘들었답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빠는 늘 “우리집에서 나는 현숙이가 제일 좋다.” 하셨죠.
결혼을 앞둔 어느 날 아빠의 행동이 너무 이상해서 아빠 뒤를 따라 갔다가 아빠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아빠의 수첩에서 그 여자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보게 되었답니다.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은 건 알았지만 아빠에게서 느낀 그 배신감은 견디기 너무 어려웠어요. 그래서 아빠랑 손 붙잡고 결혼식장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전통혼례로 한 거 였어요. 아빠는 좀 서운해 하셨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소극적인 복수였죠. 결혼하고 다시는 아빠를 보지 않고 살고 싶었어요.
하지만 천륜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이를 낳아 기르고 남편 보기에도 좀 민망하고 어버이날, 생신, 명절 때만 할 수 없이 의무로 찾아 갔었지요. 잘못은 아빠가 했는데 왜 내 마음은 점점 더 괴로워져 가는지…. 점점 그런 나의 마음이 견딜 수가 없게 되었을 때 먼저 손을 내밀어 “젊은 시절 너희들에게 많이 잘못하고 산 것 같아 미안하다.”고 해 주셨던 아빠!
너무 오랜 세월 마음이 꽉 닫혀 있어서 그 마음이 열리기 정말 쉽지 않았지만 나의 마음속에 괴로움이 사리진건 아빠에 대한 서운함, 배신감 모두 떨쳐 버렸기 때문인 것 같아요.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지시고 일주일 만에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떠나시기 전에 아빠와 화해하게 되어서 감사해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 하늘 아래에서 행복하고 좋은 일들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아빠를 떠나보낸 지금 혼자계신 엄마가 조금은 쓸쓸해 보이기도 하고 염려가 되어 아빠의 빈자리 티가 나긴 나네요. 아빠도 가족의 원망과 서운함을 떨쳐버리고 자유하시고 평안한 곳으로 가셨으리라 믿어요. 아빠를 떠나보낸 지금 잘 해드리지 못한 죄송한 마음뿐이네요. 저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아빠라는 존재만으로 감사하고 사랑으로 섬겼어야 했는데….
아빠 너무 늦은 고백이지만 사랑해요. 둘째딸 현숙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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