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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고 항상 그리운 엄마

작성자
임미남
작성일
14-12-05
조회수
871

보고 싶고 항상 그리운 엄마

글 | 임미남(런던 8기)



엄마라는 단어만 생각해도 마음이 뭉클한 이름….
너무도 고생만 하시고 가신 엄마.
육체적 정신적 마음적 고생 그 어깨 위에 짊어진 힘든 것들 주님께 다 맡기시고 지금은 편안하시죠.
양은다라 머리에 이고 섬으로 장사 가셔서 10~15일 만에 오시면 머리위에 쌀과 보리를 가지고 오시던 엄마... 그 때 나보다 3살 위 언니가 밥을 해주고 초등학교 때 도시락 한번 싸간 적 없었습니다.
우리가 굶을 때 엄마 마음은 찢어졌던 것을 지금은 알고 있습니다.
엄마는 떡 장사, 과일 장사, 생선 장사로 5일장을 다니시며 우리가 잘 때 나가시고 또한 잘 때 들어오셨죠. 항상 밥 한 그릇 이불속에 넣어 놓았죠.
한번은 잠결에 일어나 홀로 식사하시는 엄마를 보았습니다. 등잔 밑에 앉아 밥하나 김치 하나에 식사하시는 모습은 어린 마음에도 눈을 감았습니다.
너무나 처량하고 슬퍼보였거든요.
엄마 이거 아세요.
동네 분들이 이렇게 살지 말고 중매 할 테니 시집가라고 할 때 엄마가 가실까봐 잠결에도 엄마 옷자락을 잡고 있었던 것을요.
엄마가 새벽에 나가시며 빨래를 놔두고 가면 몰래 개울물에 가서 빨았다가 혼났던 것. ‘내가 엄마를 조금이라도 도우면 엄마가 가시지 않겠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생선 박스 4-5개씩 이고 역에서 장터까지 가시면 가슴이 터질듯 너무 아프다는 말씀 지금도 귓가에 들리곤 합니다.
엄마!
제가 제일 행복했던 것은 5일장 끝나고 하루 쉬는 날 엄마가 집에 계실 때 이었습니다.
학교 길에 앞마당에 빨래가 한들한들 춤출 때 너무 좋아 펄쩍 펄쩍 뛰었답니다.
엄마 가난해도 점심을 굶어도 그때가 그립습니다.
내가 열네 살 때 아버지가 오셨죠. 아버지가 낯설고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동네 분들은 이제 너희 엄마 고생 끝났다고 하셨죠.
고생은 연속의 반복이었습니다.우리는 서울로 이사를 했죠.
2년을 함께 살면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엄마를 무시하고 때리고 욕하면서 함께 한 2년은 어머니에게 행복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다시 집을 나가셨죠.
엄마는 사랑을 모르고 사시다가 주님 사랑을 나중에 알게 되셨죠.
그리고 엄마는 행복해 하셨어요.
새벽기도, 성경을 매일 읽으면서 구역장인도 되셨고요.
우리 엄마는 순종파였습니다. 교회 목사님 말씀이 너희 어머님께 당신도 고개가 숙여진다고 하셨어요. 너무나 얌전하고 예의바르신 분이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얼마나 눈물로 기도를 하셨을까?’ 생각합니다.
결국 혈압으로 쓰러져 병원 한번 못가보고 한방에 침과 뜸으로 온 몸에 뜸자리가 곪아 만질 곳 없이 돌아가셨죠.
주님 사랑으로 용서하려고 합니다. 아버지 미워하지는 않지만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지금 사시는 분과 건강하세요.
지금은 나의 딸이 학교에서 오는 시간이라 엄마의 자리에 있겠습니다.
고생만 하시는 우리 엄마 주님 안에서 편하게 계세요
그리고 미안해요. 함께 교회 못 간 것이요.
사랑해요.
엄마! 나의 엄마! 우리를 위해 끝까지 지켜주셔서
너무 너무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엄마의 작은딸 올립니다.
이 글은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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