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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대장이고! 난 그림자야!

작성자
권희문
작성일
13-12-13
조회수
1,047

아이가 대장이 되어 떠나는 특별한 여행
너는 대장이고! 난 그림자야!

글 | 권희문(편집부 장통주 남편)

이번 여행은 이제 고등학교에 올라가는 17살 그래도 내 눈엔 어린 아이인 우리 큰 아이의(권성진) 주도하에 목적지와 일정을 계획하고 아빠인 나는 그저 동행자로써 여행을 하기로 했다.
며칠 전 아이가 갑작스레 혼자서 부산으로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하는데 아니 열일곱 살짜리 소년을 어찌 혼자 여행을 보낸단 말인가!
부산 사는 분들에겐 죄송하지만 뉴스에서 계속해서 화제 되고 있는 지역에를 말이다.
부모로서 아이 보내 놓고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할 일이다.
“그럼 이렇게 하자. 아빠는 그냥 따라만 갈게. 네가 어디로 갈지, 무얼 타고 갈지, 뭘 먹을지, 어디서 잘지, 걸을지, 차를 탈지, 언제 쉴지, 갈지… 모두 결정해. 아빠는 잔소리도 안하고 간섭도 안하고 그냥 묵묵히 너만 따라 다닐게. 그러니까 아빠랑 같이 가자 응?”
아이는 썩 내켜하지는 않았지만 엄마 아빠가 혼자서는 보내줄 것 같지가 않음을 깨달았는지 그렇게 하기로 했다.
모든 일정과 여행비용, 잠자리, 차 시간 등 모든 것을 아이가 계획하고 주도하며 나는 기차표 끊어주고 온라인으로 숙소 예약만 해주고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이동해 6시 40분 부산 가는 KTX를 기다리며 아이는 햄버거를 나는 커피 한잔과 빵을 요기 삼아 대합실 의자에 앉아 열차를 기다리며 시시덕거리면서 먹고 있는데 눈에 띈 전광판 시계 6시 38분….
부랴부랴 승강장으로 가니 우리가 타야 할 기차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마터면 열차를 놓칠 뻔했네. 열차에 올라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자리에 앉으니 열차가 출발한다. 속으로 든 생각은 ‘둘이어도 이 모양인데 어찌 혼자 여행을 가냐!!!’
서울역을 떠나 광명역을 지나고 평택쯤을 지나니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고 한결 풀린 날씨 덕에 안개가 자욱하여 들판이 신비에 쌓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하며 다가오는 봄을 맞이할 채비를 한다.
아침 9시 40분 부산역 도착. 이제 본격적으로 부산에서의 배낭여행이다. 나는 아이의 곁에 서서 아이가 가자는 대로 가고, 먹자고 하면 먹고, 쉬자고 하면 쉬는 방관자이면서 동행자의 자세로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지금까지 가족끼리 많은 여행을 하면서 늘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하자는 대로 이끌려 다녔던 아이는 이번 여행은 본인이 주도자가 되어 신이 난 모양이다.
스마트폰으로 목적지를 검색하고 버스노선을 찾아보고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서투르지만 차분히 하나씩 하나씩 실패해가면서 배워가고 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흐뭇했고 마음 한편으로는 ‘야! 이렇게 하자. 저리가면 돼!’하는 말이 튀어나올 듯도 했지만 그저 꾹 참고 묵묵히 따르기로 한다.


부산역에서 지하철을 이용해 남포동역까지 가고 걸어서 영도대교를 건넜다.
그러고 보니 부산에 몇 번 와봤지만 걸어서 영도대교를 건너는 것은 처음 겪어본 일이다.
첫 번째 목적지인 75호 광장을 가기위해 버스노선을 검색해 정거장에서 버스를 탄 우리는 75호 광장에 도착했다
75년도에 조성이 되었다고 해서 75호 광장.
75호 광장에 오니 말이 광장이지 조그만 언덕배기. 그래도 이곳에선 넓은 부산 앞바다가 보이고 정박 중인 대형 화물선들이 눈에 들어온다. 날이 따뜻하여 입고 온 잠바를 벗어도 좋을 정도다.
언덕 아래 해안가로 내려가 보니 푸른 바닷물이 출렁거리고 산책로가 있고 낚시하러 온 사람들이 있다. 추운 겨울의 바다가 아닌 따뜻한 봄날의 바다 같은 분위기라서 바닷물에 손을 담가 보며 ‘좋아라!’ 바위 위를 뛰어다니는 등 부산 해변의 봄을 만끽해 보았다. 살짝 불어오는 바람에서 연한 바다의 짠 내음이 묻어나고 바다 건너에서 오는 봄의 향기를 느낄 수도 있었다. 걷는 것도 좋고 날도 좋고 아이와 이런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고 모든 게 다 좋은 이 시간이다. 우리는 해변가를 지나고 마을을 지나고 두 번째 목적지인 태종대까지 걷기로 했다.
내 속마음은 ‘차타고 이동했으면 좋겠는데… 발도 아픈데….’ 차마 말도 못하고 묵묵히 아이를 따르기로 한다.
우선 배가 고프니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을 구하는데 마침 국밥집이 눈에 띄어 우리는 서로 합의하에 그곳에서 허기를 달래기로 했다. 감사한 것이 아이가 음식을 가리는 편이 아니라서 정말 이것저것 다 잘 먹는다. 그래서 이렇게 혈기왕성 엄마 아빠를 이겨 먹으려는 거겠지.
국밥을 먹고 우리는 이제 태종대를 향하여 간다. 많은 사람들이 봄나들이를 나왔다. 젊은 남녀, 혹은 끼리끼리의 여행객들. 저마다 즐거운 표정에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있다.
영도등대 전망대의 너른 바위에도 처음으로 와 본 것 같다. 여기 앉아서 보는 바다의 풍경 또한 장관이다.
여행자의 기분을 만끽하며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가 미리 예약해둔 게스트 하우스로 향했다. 4인실 도미토리 룸인데 숙박자가 없어서 아이와 나 둘 뿐이다. 아이는 침대 2층 난 아래층에 여장을 풀고 간단히 씻고 앞에 있는 자갈치 시장에서 간단한 해산물 구경을 한 후 바다에 왔으니 꼭 먹어야 하는 회와 매운탕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슬슬 걸어서 용두산 공원에 올라 전망대에서 부산의 야경을 보고 다시 내려오니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시간. 숙소로 돌아와서 잠자리에 누우니 오늘 하루 여행으로 인한 피곤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오랜만에 엄청 걷기도 했지만 신발을 잘못 선택해서 발가락이 아프고 물집이 생기는 부상(?)을 입었다. 아이 역시 피곤한지 평소와는 다르게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밤10시 아이의 자그마한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녀석… 피곤하겠지. 아이야 언제까지 아빠가 너희들 곁에서 얼마나 많은 이런 기회를 가지겠냐? 기회가 되고 시간이 되는 대로 이런 여행으로 너희들과 좋은 추억을 남기고 싶구나. 사랑한다. 아들, 내일도 잘 부탁해.’
아침… 인근공사장 쿵쿵거리는 소리에 깨어보니 아침7시.
여행자를 위한 게스트하우스는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침구도 깨끗하고 편안한 잠자리였다.
나는 일찍 씻고 나와서 1층에 있는 홀에서 모닝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먹고 천천히 건물을 둘러보니 예전엔 아마도 여관인 듯한 건물을 게스트하우스로 꾸며놓은 것 같다.
모던한 인테리어, 젊은 사람들과 여행자 입장을 고려한 시설이 마음에 든다.
방에 돌아오니 아이는 아직 자고 있지만 구태여 깨우질 않는다. 다른 때 같았으면 일어나라고 했겠지. 하지만 일어나서 오늘 일정을 준비하는 것 역시 아이의 결정인지라 일어날 때까지 두기로 한다. 책을 보고 이것저것 끄적이다 보니 10시경. 아이는 그제야 일어나서 씻고 오늘의 일정을 시작한다. 오늘 일정은 동백섬에 있는 누리마루. 예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시절 APEC 회담 장소였던 곳이다.
입구에 있는 조선호텔에 오니 나 어릴 적 고교시절에 수학여행으로 이곳 정문 앞을 지나던 때의 기억이 불현듯 떠올라 감회가 새롭다.
동백섬 안에 들어가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옆에 있는 해운대 해변에는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다. 따뜻한 부산 지역의 날씨에 많은 사람들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변을 걷거나, 앉아서 해변의 날씨를 즐기고 있다.
여행 내내 아이의 기분도 좋고 표정도 밝아 보인다. 이번 여행은 정말 기분 좋고 색다르면서 즐거운 여행이었다. 비록 몸은 힘들고 고달프지만 아이와 함께 하면서 아이의 주도 하에 아이의 생각대로 일정을 보내는 그런 여행을 해보니 한층 더 성숙해져 있는 아이를 느낄 수 있었고 늠름하고 든든해 보이기도 한다. 언제 또 속을 긁어 철없는 사춘기 아들로 돌아갈지 모르지만 말이다.
이런 여행 기회를 제공해 주어서 아이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사랑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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