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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보냄과 떠남에 대하여

작성자
장성욱
작성일
12-12-07
조회수
1,161

떠나보냄과 떠남에 대하여

글 장성욱(라파가족심리상담센터 소장)

‘떠나보냄’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려고 하니 얼마 전에 상담을 종결한 한 가족이 생각났다. 이혼 소송중인 부모와 자녀들의 가족 상담이었는데 아버지와 고등학생 아들의 관계가 남보다도 못했다. 한 집에 살면서도 거의 말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상담 중에 아들에게 아버지께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했더니 이혼 소송 진행과 관련된 전혀 아이답지 않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이 아이는 어머니와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어서 본인도 모르게 어머니의 눈으로 아버지를 보고 있었다.
독립된 자녀의 자리에서 ‘아버지로서의 아버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와 융합된 자리에서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의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치료이론가인 보웬에 의하면 인간은 독립적으로 자신을 유지하려는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고 연결되기를 원하며, 이러한 상호작용 속에서 서로 관계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얼마나 독립적으로 사느냐에 따라 우리는 분화된 사람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한다. 보웬은 가족을 ‘분화되지 않은 자아 덩어리(undifferentiated family ego mass)’로서 서로 감정적으로 얽혀 살고 있다고 했다. 강한 밀착, 또는 융합은 감정적으로 서로 얽혀 홀로 독립되어 스스로의 에너지로 살지 못하도록 한다.
자녀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살기를 원한다면 자녀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나와 같은 생각, 나와 같은 마음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그 아이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 아이 마음으로 세상을 느끼며, 그 아이 귀로 세상을 듣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떠나는 작업’이 잘 이루어져야 한다. 떠나는 것이 잘 되려면 ‘잘 떠나보내 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떠나는 것이 자녀의 몫이라면, 떠나보내 주는 것은 당연히 부모의 몫이다.
상담과정에서 건강하지 못한 아들, 융합 되어 있는 아들에 대해 어머니와 몇 차례 이야기가 오갔지만 어머니 자신도 분화가 잘 되어 있지 않아 건강하지 못한 관계 속에 살아온 사람인지라 문제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아버지와 아들이 화해하고 가까워질까 봐, 또는 내 편을 하나 잃어버릴까봐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감정을 어머니 마음 깊은 곳에서 읽을 수 있어 마음이 아팠다.
이제 어머니는 ‘이혼녀’라는 불리한 사회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이 험한 세상을 살아 나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스스로 아들에게 매달리는 잘못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며 또한 아들을 어머니에게 평생 매달려 살게 할 잘못된 삶의 방식이 되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로 말이다. 결국 두 사람은 점점 강하게 융합되며, 관계에 있어서 객관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워지며, 서로 엉겨 붙어 도저히 풀어낼 수 없는 미분화된 덩어리로 살게 될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떠나보내지 못함으로써 자녀들이 잘 떠나는 것을 막고 있다.” 그렇다. 결혼 3년 이내의 이혼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라고 생각된다. 신혼기에 이루어야 하는 과업 중의 하나가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닌 우리만의 새로운 가정규칙’을 만드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잘 안 되는 신혼부부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들의 집에는 자녀를 떠나보내지 못한 부모들이 그들을 따라와 유령처럼 함께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목욕탕에서도 식탁에서도 심지어 침대에서도 인간 2명과 유령 4명이 함께 먹고 자고 씻는다.
각자 부모에게 엉겨 붙어 있어 떨어져 나오지 못하는데 어떻게 둘만의 새로운 규칙을 만들 수 있겠는가! 몸은 원가족에게서 떠나왔는데 감정적으로 심리적으로 원가족을 떠나오지 못한, 더 정확하게 말하면 떠나오지 못하도록 양육되어진 우리의 자녀들은 결혼해서 그 부작용을 호되게 앓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들이여. ‘우리는 부모로부터 잘 떠나왔는가? 우리의 자녀들을 떠나보낼 준비가 되었는가? 이미 잘 떠나보내었는가? 혹시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떠나지 못하도록 강하게 묶어두고 있지는 않는가?’ 조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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