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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안동 여행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12-12-07
조회수
1,061

비포 & 에프터 여행
추억의 안동 여행
사진 앨범을 들추어 보자.
어린 아이를 데리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추억할 만한 사진들을 찍어 꼽아 놓은 것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아이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너 기억 나니?”라고 물으면 대부분 전혀 기억에 없다고 한다.
자녀가 어린 시절의 여행은 자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부모를 위한 여행인 듯 하다. 11년 전의 사진을 들추어 보며 “그래.!! 여기로 다시 가보자!! 그 멤버 다시 모아서!!” 하며 시작된 추억의 안동여행.
11년 전의 발자취를 따라서…

글 편집부

11년 전 큰 아이 5살, 작은 아이 2살, 그리고 언니네 조카딸 4살, 두 집이 모여 안동 지방을 여행하였다.
안동은 뭐니 뭐니 해도 한옥, 고택, 전통의 마을이니 고택 체험도 할 겸 한옥집에 민박을 예약하고 유명하다고 할 만한 곳을 찾아 다녔다.
하회마을, 병산서원, 도산서원, 고수동굴 등을 둘러보았었던 우리들…. 11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큰아이 16살, 작은아이 13살 그리고 언니네 조카딸 15살이 된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안동 지방으로 떠났다.
그때 머물렀던 [수애당]
수애 류진걸 선생이 1939년에 건립한 사가로 건축주의 호를 따라 당호를 ‘수애당’이라고 하였다.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수몰지역 안에 있던 수애당은 기와 하나 대들보 하나까지 모두 그대로 옮겨와 복원한 형태로 유지 운영 중이다. 11년 전에도 캄캄한 밤길을 달려 ‘여긴가? 저긴가?’ 길을 조심조심 찾아서 당도하였던 수애당. 우리가 계획하였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도 ‘여긴가? 저긴가?’ 두리번거리며 길을 찾아 깜깜한 밤중에 당도하였다. 전에 뵈었던 주인 아주머니 역시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많이 나이드신 모습이었지만 그 명랑함만은 여전 하셨다.
“우리 11년 전에 여기서 묶었었어요. ‘추억의 되밟기 여행’중이라서 다시 한 번 찾았네요.”
하는 우리의 말에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셨다. 무엇보다 미리 출력해간 11년 전의 사진들을 보여드리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우리는 사진을 나누어 보면서 추억을 되새기고 서로 신기해하며 즐거워하였다.
그때 사진을 찍었던 장소에서 그 포즈로 다시 사진도 찍어 보았다. “어쩌면 몇 년 후, 우리 아이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서 또 찾아올지도 모르겠어요.”라는 말에 고택에 대한 정부 지원이 미미하여 시설 면에서 더 좋게 확충하지 못하는 점 때문에 마음고생 하시던 아주머니는 보람이 느껴진다며 웃음을 지어내셨다.
아주머니와 작별을 하고 병산서원과 도산서원을 향하여 출발 하였다. 여행하면서 그 옛날의 길과 나무와 집들이 그대로 그 자리에 있으리라고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기억속의 길들이 많이 변하여 다시 한 번 세월의 유수함을 느낀다. 병산서원은 조선시대 류성룡이 지은 서원으로써 한국 서원 건축의 백미로 이름날 정도로 지은 솜씨가 빼어나고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주변 경관과 너무나 잘 어우러져 있어서 ‘옛날의 선비들이 여기서 공부가 잘 됐으려나?’하는 궁금증도 든다.
앞에는 깎아지른 듯 한 절벽 아래로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서원 뒤편으론 병풍 같은 산이 우아함을 자아내고 있다. 정말 좋은 터에다 서원을 지었다. 개인적으로 ‘안동’하면 병산서원을 꼭 가볼 것을 권한다. 서원 구경을 마치고 낙동강에 옹기종기 모여 이모부배 오천원 경품 물수제비뜨기 시합도 벌였다. 최종 우승은 조카딸 수아가 차지하여 우리 아이들의 아쉬움이 있던 경기였다.


이젠 두 번째 민박 코스인 하회마을로 떠난다. 하회마을에서 민박도 가능한지 몰랐는데 우수하고 훌륭한 신랑님께서 이미 민박집을 다 물색하고 예약까지 마친 상태라 우린 너무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민박집에 짐을 풀고 주인 할아버지가 안동찜닭을 아주 맛있게 하는 집이 있다고 권하여 그 집에 예약을 해놓고 음식이 준비되는 동안 하회마을을 수박 겉핥기로 둘러본다. 한류스타 류시원의 집도 보인다. 류시원의 집 문패를 해외 팬들이 자꾸 떼어간다 하여 그 집 문패만이 아주 새것이었다. ‘요절한 천재가수’라 불리는 유재하도 하회마을에서 살았다지. 주인 할아버지가 어디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긴 했는데 확실히 어딘지는 찾지 못하였다.
어둑어둑 해졌으니 하회마을 한 바퀴 돌고 밥집에 들어가 저녁을 먹는데 정말 하회마을 이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맛있는 안동찜닭은 처음 먹어 보았다.
대체로 다른데서 먹었던 찜닭은 간장 맛이 강했고 맛이 깊이 배지 않고 맵기만 했는데 이 찜닭은 우리 모두의 의견을 모으자면 “정말 맛있다.”이었다. 보기엔 허름하지만 [작천고택]이라 이름 붙은 그곳은 중요민속자료 제 87호였다.
배도 부르고 잠을 청하기 위해 민박집에 들어가니 화장실 겸 샤워실이 하나라 오래오래 기다려서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역시 민박은 펜션이나 모텔이 아니라서 그런 불편함은 미리 예상을 하고 떠나야 하리라.
하회마을에서의 1박이라 왠지 설레고 좋았지만 피곤하여 금방 쿨쿨 잠이 들어버렸다.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나는 법. 가장 먼저 눈을 뚠 우리 부부는 잠옷 바람 그대로 머리를 산발한 채 슬리퍼를 끌고 하회마을 새벽구경 길에 나섰다.
6시정도 된 시간이었는데도 드문드문 국내, 해외 관광객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아마도 그들이 우리를 바라보며 ‘어머 쟤네 옷차림이 왜 저래.’ 했을 정도로 민망한 옷차림이었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없을 줄 알았다.
담장 안에 아무도 따먹지 않는 오디도 따먹어 보고, 눈치껏 앵두도 따먹어 보며 킬킬거리며 산책하는 경험도 참 좋다. 1차 산책을 마치고 아이들을 깨워 짐을 꾸리고 아이들에게 본격적으로 하회마을 체험을 시켜줬다.
마침 ‘트라이웨어’라고 하는 오토바이 같이 생기긴 했으나 서서 탈 수 있는 전동차가 있기에 하나씩 빌려서 편하게 구경하기도 했다. (40분 10,000원)
전통마을에서 전동차 유람이라니 조금 의외였다. 하회마을은 양반마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 서민, 농민이 사는 마을도 있다는 것을 이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늘 매스컴에서 주로 양반마을만 집중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반마을 반대편으로 논도 있고 밭도 있고 초가집도 있고 일반 서민들이 사는 초가마을도 있었다.
농민들은 일찍부터 일어나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해가 뜨는 걸 빨리 봐야 해서 동쪽에 마을이 구성되어 있고 그 반대편에 늦게 일어나도 되는 양반님들이 사는 마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여기서 소개하지 못한 부분들도 많이 있지만 지면이 짧은 관계로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기로 한다.
꼭 안동이 아니어도 좋다. 어릴 적 아이들을 데리고 갔던 여행 장소를 성장한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 보는 것도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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