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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작성자
김번영
작성일
12-05-21
조회수
855

성장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글 | 김번영(교수)

‘나를 찾는다?’ 두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첫 째는 ‘내가 누구인가?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찾아 나설 것 아닌가?’ 두 번째는 ‘어디서?, 누구에게서? 혹은 무엇에서 찾는단 말인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는 철학의 가장 큰 화두가 바로 이 ‘나’ 찾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현자들이 한 마디씩 남기려 애쓴 화두가 바로 ‘나를 찾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심리학이란 뭔가? 한 마디로 ‘마음’ 찾기 아닌가? 그런 현자들의 말을 빌리면 크게 두 부분에서 ‘나’를 찾고 있었다.
첫 째는 ‘정체감’이란 화두로 찾았다. 그들은 이것을 정체성(identity)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역할(role)에서 자신을 찾으려 했다고 할 수 있다. ‘정체성이란 뭔가?’ 소위 말하는 ‘줏대’이다. 즉 나를 인식하는 주요 부분이 정체성이다. ‘어떻게? 무엇으로 인식하는가?’ 오감으로 인식한다. 여기까지가 현대 학문이 찾아낸 결과이다. 그럼 ‘역할이란 무엇인가?’ 그 정체성을 가진 ‘나’에게 타인이나, 자신의 공동체 구성원이 기대하고, 요구하는 행동과 정서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살아간다. 이 두 가지가 순조로우면 ‘성장’이라고 하고, 순조롭지 못하면 ‘정체’라고 한다.

세상에는 크게 세 가지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 간다
1) 요즘 아이돌 스타의 노래에서 나오듯이 “♬난 정말 예뻐♬” 족이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 보면 자기 장막을 치는 것일 수도 있다. 교만, 외로움, 세상을 향한 두려움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2) 또 다른 하나는 “♬넌 10점 만점의 10점…♬” 타인의 평가에 의해 살아가는 나이다. 타인에게 맞춰야 한다는 강박에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과도한 배려나, 자기 콤플렉스를 감추는 행위로서 나타나는 경우일 수도 있다.

3) 마지막으로 신비함에 거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위의 두 가지 즉 위의 두 가지로 보면 “내가 생각하는 나도 나고, 네가 생각하는 나도 나이다.”는 것이 통합 되었지만 거기에 한 가지를 더 부여한다. ‘신이 내린 자신’이다. (시8, 벧전2:9) 프랑스 사상가 레옹 블로아가 말하기를 “사람은 빵이 없어도 살 수 있고, 집이 없어도 살 수 있고, 술이 없어도, 사랑이 없어도 살 수 있다. 그러나 신비함이 없이는 결코 살 수 없다.” 인간이 인간다운 존재가 되는 것은 배부름과 편안함을 해결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신비함이 사라진 인간은 그 자체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나’는 신비한 자이다.

여기서 우리는 신비함과 비밀함의 차이를 생각해 보자. 신비함은 열려있다. 왜냐하면 빛이기 때문이다. 빛은 노출되어 있다. 자신을 여는데 두렵지 않다. 반면 비밀함은 닫혀 있다. 왜냐하면 어둠이기 때문이다. 배움이 부족한가? 모른 다는 것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배우는 것이 두렵지 않다. 실수를 했는가? 감추려 하지 않는다. 사과함이 두렵지 않다. 그 사람은 신비한 사람이다. 그러기에 신비함은 자긍심이 되고, 비밀함은 짐이 된다. 나는 누구인가? 신비한 존재이다. 신비한 존재는 찾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있는 존재 그 자체이다.
신비한 자의 역할은 신비한 역할이 주어졌다 함은 신비한 일이 있기에, 그 일을 맡는 역할이 있지 않겠나? 그런데 문제는 신비함이란 그 어느 것에도 규정(판단)되지 않으며, 끝이 없다는 것이다. 규정(판단)되고, 끝이 보인다면 그것은 그 순간부터 더 이상 신비함이 아니다. 그러기에 신비한 자의 역할은 이 세상 마지막 날까지 끝이 없다. 즉 신비한 나의 역할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신비한 자가, 신비한 일을 맡긴 것이다(고전4:1-5).
그럼 어디서부터 신비한 나를 찾을 것인가! ‘과거? 현재? 미래?’
세상 많은 처세학 책들이 쏟아 내는 말이 바로 ‘미래’이다. 한 때 서점가를 뒤 덮은 책 ‘스티븐 코비의 7가지 습관’이랄지, ‘긍정의 힘’이랄지, ‘목적이 이끄는 삶’이란 책들은 결국 미래를 상정해 놓고 살라는 것이라고(나의 생각은 저자의 의도와 다를 수도 있지만) 저자들이 말하는 듯 하였다. 그래서 그럴까? 나는 그렇게 썩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또한 나는 그 책들의 내용이 도리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다 그렇게 성공하고, 다 그렇게 이루게 되면 결국 다 이룬 사람들끼리 모여 있기에 공허감만 더 할 것 같았다.
‘나 된 나는 어느 시점에서 찾아질까? 신비한 나는 어느 관점에서 찾을 수 있을까?’
지금 이순간의 ‘나’가 현재의 ‘나’이다. 이 현재의 나가 과거의 나를 만들고, 미래의 나로 가는 길목이 된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어제의 나의 선택이 오늘의 나이라고…” 틀린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정답이라고 할 수도 없다. 정확히 말하면 오늘의 나가 어제의 나를 규정한다. 물론 과거의 나가 오늘의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나를 규정하지 못한다.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를 규정한다. 마찬가지로 미래의 나, 상상된 나라는 자신이 오늘의 나를 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나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나를 열 수 있다.

 

김번영 교수가 제시하는
나를 찾기 위한 세가지 방법

하나. 무엇을 보는가?
나가 된다는 지금 내가 이 시점에서 무엇을 보는가에 달려 있다. 나의 신비함을 보는가? 나의 비밀함을 보는가? 나의 과거 상처를 보는가? 나의 과거 승리를 보는가?

둘. 무엇을 찾는가?
오늘의 나에게서 무엇을 찾는가? 나의 상처들을 뒤지고 있는가? 조상 탓 하려고 내면아이 치유에 매달려 있는가? ‘존재됨’만이 이 세상에 존재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오늘의 나, 존재됨을 무엇으로 찾을 것인가?

셋. 보물이 있는 곳에 내가 있다.
나는 상담을 하면서 희한한 것을 보았다. 분명 불륜이거늘 은근히 자랑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왜?’ 나름 그것이 보물이다. 보물은 감춘다. 그러면서도 누군가에게는 자랑하고 싶어 한다. 당신의 보물이 무엇인가? 당신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바로 당신의 보물이다. 내 손에 있는 것을 당신의 보물로 생각한다면 당신은 필시 강도가 되려는 불한당일 것이다. 당신 손에 쥔 보물이 바로 당신이다. 그것이 크던 작던, 아름답던, 못난 것이던 그 보물이 이 세상과 맞 대항 할 무기이다.

프로필
한신대학졸업 / Trinity Western University(캐나다) / The University of Pretoria(남아공화국) 기독교교육석사, 목회상담학졸업
저서
여행길의 동반자 / 이야기치료와 상담 / 재혼코칭
강의
이야기치료 상담협회 / 한신대, 성결대 / 동산교회 상담아카데미 /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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