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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시어머니와 계절여행

작성자
김지영
작성일
11-12-16
조회수
967

시어머니와 계절여행

글 김지영(본부 23기)

일제시기를 보내고 한국전쟁의 무서운 기억을 가지고 계시는 시어머니를 볼 때마다 내가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어머님때문이라고 늘 생각한다. 왜냐하면 너무 많은 일을 하셔서 손톱을 잘라 본 적이 없는 분이 우리 시어머니고 12살의 어린 나이에 먹을 것이 없어 민며느리로 팔려온 여자 아이도 우리 시어머니며, 부모의 사랑뿐 아니라 남편에게도 자식들에게 조차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며 나의 사랑 고백에 흐느껴 우시던 가슴을 아리는 아픔을 조용히 느끼게 하신 분도 우리 시어머니이시다.
너무도 사랑하고 애잔한 슬픔마저 들게 하는 우리 시어머니를 진정으로 존경한다. 학교 문턱에도 다녀 본 적이 없는 나의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위해 명절 며칠 전부터 명절에 쓸 음식들을 한 가득 만들어 놓으시고 싸줄 음식까지도 장만해서 창고에 쌓아 두는 마음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신 분이시다. 며느리의 생일이 오면 좋아하는 떡과 물김치를 담가 가지고 기차를 타고 행복해 할 며느리를 보러 오시는 분, 그 분이 나만의 시어머니이시다.
지난 봄 시어머니와 집 앞 비닐하우스에서 유채를 1시간 넘도록 낫으로 베면서 이 얘기 저 얘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바닥에 짚을 깔아놓고 앉아서 땀이 비 오듯 떨어져도 온 몸의 땀을 닦으며 어머니와 나는 내 남편 얘기, 어머니 남편 이야기로 남편들의 흉을 보고 자랑도 늘어놓으며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이야기 할 사람이 없어 심심해하시는 어머니는 언제쯤 또 올 거냐며 며칠 전 아침에 전화를 하셨다. 나는 다시 사랑하는 여자를 보러 양평 시댁에 갈 것이다. 83세의 고령의 어머니를 뵈러 갈 것이다. “어머니 사랑해요!”라고 외치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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