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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카자흐스탄 1기 어머니학교를 섬기고

작성자
신옥자
작성일
11-11-25
조회수
751

카자흐스탄 1기 어머니학교를 섬기고

글 신옥자
 

처음 카자흐스탄 어머니학교를 함께 하자는 연락을 받고 나의 마음은 두려움과 기대감이 교차되며 2주간을 보냈습니다. 나보다 영성이 높은 여선교사님들과 사모님들이 모슬렘과 공산주의 사회에서 희생하며 지내온 삶의 아픔과 힘든 선교의 고통으로 그늘진 삶을 내가 어떻게 섬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를 사역의 현장으로 이끄신 주님의 사랑 때문에 척박한 땅, 열악한 환경, 낯선 만남 등의 염려를 뒤로 하였습니다.
출국수속을 하고 말로만 듣던 낡은 비행기 탑승, 입국수속을 끝내고 알마타 공항 밖으로 나왔을 때 새벽의 음습한 공기만큼이나 어머니학교의 첫발은 무겁게 내딛어졌습니다. 맞아주는 알마타 감리교회는 카페트 밖에 없는 냉랭한 숙박시설로 우리의 피곤한 몸을 더욱 꽉 죄어 긴장된 첫날을 맞이하게 했습니다. 스태프 모임 전에 큐티를 하니 ‘하나님을 위해 용기를 내라.’였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구나.’ 묵상을 끝내고 본당으로 들어가 지원자(여선교사님들과 사모님들)를 기다렸습니다.
첫째 날, 만남부터 당당한 지원자들과 눈인사를 했지만 먼저 그곳에서 알고 지냈던 지원자들끼리 안부 묻고 소식 전하느라 내가 끼일 자리를 찾기가 어려워 서먹함과 어색함은 쉽게 깨지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첫 강의가 시작되면서 눈가에 맺힌 눈물방울이 하나 둘 나도 모르게 주르르 눈물을 흘리며 나눔을 시작으로 말문을 트기 시작했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등 뒤에서 손을 얹으시며 그 분들을 섬기라고 더 낮추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첫날은 그렇게 보이기 싫은 눈물을 보인 것이 쑥스러워 서로의 시선을 피하며 계면쩍은 미소로 인사하고 헤어졌습니다.
둘째 날, 눈에 익은 선교사님의 모습에 반갑게 미소 짓고 한 분 한 분 손을 잡으니 따스한 온기와 함께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나눔 시간이 되자 어제와는 달리 서로의 형편과 자라온 환경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부모 때문에 받은 상처와 아픔, 그로인해 내가 본받고 싶지 않았던 그 모습들을 자녀에게 행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내 모습인 것을 알게 되자 서로 안고 울고 웃고 있었습니다. 허깅할 때 서로 맞닿은 가슴으로 그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게 하셨습니다.
자녀와의 관계를 나눌 때는 정말로 눈물범벅이 되었습니다. 선교사님과 손을 잡고 나의 아픔을 나누며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니 우리는 금방 친자매 이상의 관계가 된 것을 느꼈습니다. 이제야 왜 나를 이곳에 보내셨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저녁에 스태프들과 그동안 나누지 않았던 나의 아픔을 나누었습니다. 딸 둘과 아들 하나를 선물로 주셨던 하나님이 내게서 큰 딸 아이가 고2를 마친 추운 겨울에 급하게 데려가셨습니다. 마지막 인사도 없이 눈 맞춤도 없이 그렇게 이별을 시키신 주님. 나는 집에 있지 못했던 죄책감 때문에 그 때부터 집을 떠나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항상 자녀들이 외출해서 돌아올 때면 집에서 반겨주고 뒤에서 챙겨주는 것이 나의 일과였고 사랑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많이 간섭하고 잔소리하며 나의 소유물로 되어버린 자녀들이 받았을 압박감과 엄마의 시선에 갇혀버린 시간들, 자유하지 못한 삶의 모습들을 생각하니 너무 마음 아프고 미안했습니다. 이번에 특히 늦둥이 아들의 힘들어하던 모습이 나를 질책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실수로 눈물 흘리지 말아야지 하는 회개의 눈물과 함께 감사기도로 하루를 마감했습니다.
셋째 날, 지원자 모두가 어머니학교 유니폼인 핑크빛 블라우스 차림으로 멋을 내고 들어오는 것을 보며 나는 환영의 허깅을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어느새 헤어져야 하는 시간을 아쉬워 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어머니’ 강의를 들으며 우리가 주님의 딸로서 얼마나 올바른 어머니였나를 다시 보게 하시고 “주님 제가 어머니입니다!”라는 표어가 실감나는 시간 시간이었습니다. 아내의 역할, 어머니의 사명을 마음속에 다짐하며 우린 진정한 여성으로 거듭나고 있었습니다.
오전 어머니학교의 일정을 마무리 하고 오후에는 아버지학교와 연합하여 아름다운 회복의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남편에게 감사의 편지를, 아내에게 사과의 편지를 읽으며 이어진 부부회복의 나눔 시간이 참으로 아름다워 스태프 모두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어머니학교가 모두 끝나고 우리 스태프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떠나올 때의 걱정도 피곤한 몸도 이제는 카자흐스탄 밤하늘을 보며 서로가 위로해주고 축복해주는 사랑의 교제가 넘쳐났습니다. 이런 체험을 주신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번 어머니학교를 지원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집에서 기다리는 남편, 딸, 아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믿지 않던 남편이 지금은 주님의 아들 된 삶을 살고, 또한 나의 완벽했던 성격을 주님께서 당신께 집중케 하시어 사용하시는 것, 언니를 잃고 한동안 방황했지만 이제는 어엿한 숙녀가 되어 자신의 삶을 설계하며 잘 자라준 딸, 어느덧 훤칠한 키에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진 아들이 나의 중보자가 되어 편한 마음으로 보내준 것에 감사했습니다. 그동안 돕는 배필의 역할도 어머니의 자리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던 것을 다시 생각하며 한자 한자 나의 마음에서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을 담아보았습니다. 떠나기 전날 밤 큐티 제목을 보니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이곳 카자흐스탄의 어머니학교가 나에게 은혜의 자리로 준비되었던 주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우리의 작은 섬김으로 선교사님들과 사모님들의 아픔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시간이었기를 바라며 이 어머니학교가 전 세계의 어머니들이 회복되어 가정이 살아나는 현장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아버지의 딸이어서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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