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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좌충우돌 금식기도 도전기

작성자
김연희
작성일
11-11-24
조회수
1,006

좌충우돌 금식기도 도전기

글 김연희

‘회복과 부흥을 위한 전교인 금식기도’ 라는 제목이 주보에 자꾸 떴다.
‘전교인’ 이라는 말이 자꾸 걸린다.
하루 금식 정도는 몇 차례 해봤던 남편은 크게 고민하지 않고 네 끼 금식을 하자고 했다.
처음 해보는 나는, 먹는 거 너무나 좋아하는 나는, 한 끼만 굶어도 심하게 껄떡거리는 나는,
정말이지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일단 한번 시도해 보다가 안 되면 할 수 없지 하고 저질러버려? 좀 더 신실해진 다음에 하겠노라고 발뺌을 해? 이런 건 내 일이 아닌 듯이 초연히 넘겨버려? 머릿속에서만 디굴디굴 굴린 채로 며칠을 보냈다. 금식을 하니 안하니 물어보는 사람도 없고, 금식을 하라고 미는 사람도 없고, 우유부단의 대명사인 나는 역시나 부표처럼 흔들거렸다.
네 끼 금식을 하자는 남편 말에 일단 그러자고 했다. 근데 머릿속에서 자꾸만 잡아당기는 것이, 너 정말로 밥 굶을 수 있냐~ 한 끼도 아니고 네 낀데? 애들은 어떡할 거야. 방학이라 집에서 세 끼 꼬박꼬박 다 챙겨줘야 하잖아. 갸들이 쪼끔이나 먹어? 간식도 수시로 먹잖아. 밥은 그렇다해도, 커피는 어떡할건데? 너 커피가 거의 중독 수준이잖아. 하루에 대여섯 잔은 기본이잖아. 창피하게 말만 번지르르하게 해놓고 막상 지키지도 못하는 엄마 꼴을 보여주느니 애당초 능력에 맞게, 못한다고 인정해? 허허...하나도 틀린 말들이 아니었다. 그게 나였다. 그래서 저지르기로 했다. 어느 분께 말을 해버렸다. “저 금식해서 그날 못나올지도 몰라요.” 라고. 금식은 자랑하는 것이 아니랬다. 허나 이건 자랑용도 아니고 사실의 전달도 아니고, 오직 내 마음을 더 이상 빼도 박도 못하게 만드는 수단이었다. 선포! 입술로 시인했으니 이제 더 이상의 망설임이나 갈등은 없어졌다. 시작이 되면 금식에 들어가는 것 뿐.

금식 날 아침이 되었다. 얄팍한 사람의 마음은, 전날 과식을 하도록 만들었고, 밤새 트림을 꺼억~꺽 해대고 소화되지 않은 구린 가스를 쉼도 없이 내보내면서도 ‘뭘 조금이라도 더 먹어주고 금식을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강박에 시달리게 했다. 이날따라 더 늦잠을 잤다. 허둥지둥 남편 아침을 차려주고 얼떨떨한 가운데 금식 첫날이 시작되었다.
남편은 회사일로 부득이하게 식사를 할 수밖에 없어 금식을 포기했다. 뭐라고 말 할 순 없었지만 어쩐지 뭔가 억울한 것같아 볼이 부었다. ‘다른 날도 아침은 거의 안 먹으니까~’ 이러면서 운동을 갔다. 금식을 하니 운동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금식하며 유난떠는 것 같은 모양새가 싫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그렇게 금식을 하는 거다, 할 거 다 해가면서. 그래도 저절로 몸이 사려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미용체조를 빼먹고 집으로 왔다.
엄마가 먹을 걸로 보이는 두 아들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아침 숟가락 놓으면서 ‘엄마 점심은 뭘 먹을 거야?’ 점심 숟가락 놓으며 저녁엔 무엇 무엇을 먹으면 어떠냐고 묻는 것이 평소 생활 패턴인 우리 아들들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엄마 뭐 맛있는 거 사온 거 없어? 점심 뭐 먹을 거야?”로 역시나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어흑~~

근데 참 이상하게 낯이 설었다. 그 시간과 공간들이. 뭐를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면서 괜히 빙빙 할 바를 못 찾고 자꾸 어정쩡해졌다. 먹는 것뿐만 아니라 눈(보고), 귀(듣고), 입(말하고) 모든 것의 ‘절제’라는 것을 떠올리니 시시덕거리며 TV를 보아서도 안 될 듯 했다.

배에서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평소대로라면 운동이 끝난 뒤 하루 식사 중 대부분의 양을 차지하는 방대한 량의 아점(아침겸 점심)을 먹을 시각이었다. 허나 허용되어 있는 것은 보리차도 아니 되는 투명한 생수뿐이 아니던가. 한 컵을 따라 마셨다. 빈속에 찌르르 몸을 타고 생수가 흘러 내려가는 듯 했다. 갈 길이 먼데 이쯤에서 꺾어지랴. 스스로를 독려한 뒤 성경책을 폈다. 궁극적인 목적이 이것이 아니던가. ‘어쩐지 에베소서가 읽고 싶어져 그곳을 읽어 내려갔다.’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무색하게도 곧 졸기 시작했다. 어흑 (ㅠ,ㅠ)
금식하면서 느낀 두 가지 신체 증상 중 하나였다. 끊임없이 졸음이 왔다. 잠시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면 여지없이 졸음이 엄습했다. 그리고 몸이 추웠다. 그다지 냉한 체질이 아닌데도 아침에 운동 후 샤워한 이후로 몸이 따뜻해지질 않았다. 손끝 발끝이 시려와 아이들에게 여러 차례 확인을 했다. 너희들도 지금 집이 춥냐고.
양말 신고 옷 하나를 덧입어도 몸의 추움이 가시지를 않았다. 잠잘 때까지도 계속되어 전기장판을 뜨겁게 덥혀 몸을 뉘었는데도 몸의 온기가 돌아오기까지는 정말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오늘은 엄마가 금식하는 날이야. 그러니 너희들도 엄마를 돕지는 못할망정 최소한 방해는 말아야 해, 알았지?”라고 아이들에게 경건할 것을 강조했다. 몸이야 컸지만 철딱서니 없기는 큰 놈이나 작은 놈이나 매한가지여서 밥 굶는 엄마 앞에서 약 올리며 먹거리를 먹을 녀석들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작은엄마가 작은 찬통 하나에 담아주신 무말랭이 짠지무침을 보며 먹고 싶다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어린시절, 할머니 손에서 자라온 터라, 할머니가 해주시던 음식에 대한 향수가 내겐 있다. 나이와 세월은 이길 수가 없어서, 그 당시엔 별반 맛있게 먹지도 않았던 음식들이 나이가 들어가며 더러 생각이 난다. 무말랭이 짠지도 그 중 하나인데, 요즘 시중에 파는 중국산 무말랭이처럼 굵지도 매콤한 양념도 아니었다. 채쳐 말린 실 같은 무말랭이에 간장으로 간을 하여 갖은 양념으로 무쳐낸 무말랭이는 윤기가 도는 뜨거운 아끼바리 쌀밥에 혹은 물 말은 밥에 얹어 먹기에 안성맞춤인 반찬이었다. 구부리고 앉아 그렇게 밥을 드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먹고 싶던 짠지를 한입 먹어보지 못한 채 금식에 들어간 관계로 너무나 오랜만에 맛볼 수 있는 그 옛날의 음식을 애들에게만 내놓고 있었다. 그런 음식 요즘 애들이 누가 좋아하랴 싶었는데, 뜻밖에도 편식이 거의 없는 작은 아들이 맛있다며 먹는 것이었다. 맛있게 먹으니 먹고 싶은 맘이 더욱 동했던 것이리라.

“먹고 싶다.” 이 한마디가 기폭제였다. 그때까지 눈치만 보며 거룩거룩 흉내만 내고 있던 나를 보던 큰 아들이 본격적인 태클을 걸기 시작했다. 이 자식의 태클은 이러했다.
“♪야식 야식 먹~자 맛있게도 먹~자 ♬” 95.9 MBC FM 밤 12시 ‘박경림의 심심타파’에서 나오는 야식송(夜食 song)이다. 말 그대로 야식 예찬 노래다. 덩치가 산만한 큰 아들은 노래를 부르더니 얼굴을 들이밀며 춤까지 추기 시작했다. 나쁜 놈... 나를 너무나 정확히 아는 놈이라 이런 만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우리 네 식구는 모두가 대식가이고 먹는데 너무나 약하다. 엥겔지수, 엄청 높다.
다른 식구 모두 제끼고 이 녀석과 나만 가지고 말하자면, 큰 아들은 예비 고1로 키177cm, 몸무게 팔십 몇 킬로그램, 발사이즈 약290cm, 농구공을 한손으로 잡는 손 크기로 국내에서 생산한 장갑 중에 맞는 것 없다. 어느 날 피자 라지 한 판과 스파게티 일인분을 앉은 자리에서 다 먹더니 그 담부터는 피자 한 판이 공식 지정 양이 되어버렸다. 이젠 원+원으로 두 판 시켜도 우리 식구들이 부족하게 된 것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먹는데 있어서 어디 내놔도 빠지지도 지지도 않는 우리 큰아들이 가끔 지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나’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떨 때는 내가 그 애를 오버한다. 특히 뷔페 같이 장기레이스에 돌입해야 하는 곳에서는.
단아하고 경건하고 거룩한 모습으로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묵상을 해야 했는데, 한 순간의 흐트러짐이 결국 공격의 모티브가 된 셈이었다. 큰 아들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뿜어져 나와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을 질질 흘리며 거의 말 한다기보다는 성토에 가깝게,
“난 엄마가 금식 끝나는 3일 저녁을 어떻게 먹을지가 너무나 궁금해~ 내가 밥 두 그릇 먹는 동안 엄마는 아마 계속 go, 계속 go 할 걸. 푸하하하하”
“금식 끝나고 나면 속 달래느라 많이 먹지도 못해!”
난 쏘아붙였지만, 정말 어떨지 내가 나를 알 수가 없어서, 말끝에 힘이 빠져버렸다. 저 자식은 날 너무 많이 알아.
저녁 무렵이 되니 정말 힘이 들고 지쳐갔다. 교회에 가야지. 금식하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회가 여러 차례 준비되어 있었다. 저녁 예배에 참석했다. 역시 금식 중이신 선교사님이 요번 기도회를 이끌고 계셨다. 믿음이 좋으신 분들은 저리도 다른가. 저분들이 과연 금식 중이신 분들이란 말인가. 저분들은 온전한 금식중이라 금식 이틀째의 저녁을 맞는 분들인데. 기가 질릴 정도로 찬양을 인도하시는 분의 얼굴은 밝고 힘찼다. 집회를 이끄시는 선교사님 역시 보양식이라도 한 그릇 드시고 올라오신 듯 정말이지 지친 기색이란 하나도 없이 생생하게 말씀을 전하시는 것이었다. 사흘간 총 일곱 번의 집회를 갖는 그 분이셨다. 놀라울 따름이다. 단 한번의 설교에도 쏟아내는 에너지가 상당량일텐데 같이 굶으며 일곱 번을 서신다니. 정말 기쁘게 혼신을 쏟으며 찬양하고 설교하시는 교역자분들을 보니 저절로 힘이 났다. 같이 큰소리로 찬양을 하며, 재미있고도 감동적인 설교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며,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목청껏 외치며 기도를 하는데 여지없이 눈물이 범벅이 되었다.
언젠가부터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찬양을 하면서도 눈물이 나고, 기도할 때에는 거의 백 프로였다. 남편이 한참 그랬던 적이 있다. 교회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벌써 울기 시작하는 남편을 보며 ‘이건 거의 조건반사 수준이군.’이라고 생각했더랬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자신을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셨던 하나님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고 했다.
“그때는 몰랐었는데 그 어려웠던 매순간마다 내가 그때 너와 함께 했었느니라. 하나님을 알기도 전인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시간별로 일어났던 사건 사건들이 영사기 돌리듯 촤르르르 흘러가며 내가 그때도 거기 있었고, 그때도 거기 있었고… ”면도를 하러 욕실에 들어갔던 남편이 눈물이 범벅되어 나와서 한 말이었다. 난 그런 것도 없었다. ‘영사기.. 촤르르...’ 이런 거 전혀 없었다. 어느 날 기도하다가 눈물이 조금 나더니, 찬양에 가슴이 뭉클해져 눈물이 조금 나고 이런 식이었다. 흙이 조금씩 무너져 물 한줄기가 졸졸 새다가 점점 그 줄기가 세져 나중엔 완전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그렇게 스며들듯 하나님이 믿어지더니 눈물 또한 그런 방식으로 흘렀다. 그러면서 기도에 몰입해가는구나 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기도 후에는 시원함과 더불어 입안 가득 달콤하게 번져가는 것 같은 편안하고 안락한 기쁨이 있었다.
금식 이틀째의 아침이 밝았다.
전날까지는 없었던 두통이 생겼고 멍한 느낌이 가중되었다. 남편은 “오늘은 운동가지 말아라.” 당부 하고는 출근을 했다. 나중에야 깨달았다. 운동했으면 큰일 날 뻔 했다는 것을.
다시 교회에 갔다. 전날과 걷는 느낌이 달랐다. 땅에서 약간씩 떨어져서 걷는 듯 했다. 무중력 상태처럼. 머리가 반짝하게 벗어진 선교사님의 집회는 여전히 힘 있었고 전해지는 메세지는 강했다.
“여러분의 얼굴이 빛이 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얼굴들이시군요.” 정말 빛나는 얼굴을 하고 계신 선교사님이 그렇게 금식하는 우리들을 격려해 주셨다. 배에 힘이 없어 찬양이 자꾸 끊기고, 몸이 앞으로 수그러졌다. 기도도 나붓나붓 잔잔하게 흘렀지만 은혜가 넘쳐 그런지 시간은 후딱 후딱 지나갔다. 기도 끝내고 나오면서 시간을 보니 낮 12시 45분을 지나고 있었다. 나의 금식은 정오까지였으니 벌써 그 시각을 넘긴 것이다. 첫 금식에 성공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젠 먹어도 되는 것이었다. 하~~
기도의 힘은 강했다. 금식을 들어가면서 처음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음식의 냄새를 맡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냄새의 유혹을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그것조차 자신 없으니 아예 음식 냄새가 안 맡아지게 해주세요’라고. 아이들에게 샌드위치를 해주느라 햄을 굽고, 계란 후라이를 하고, 신김치를 볶아 돼지고기 썰어 넣고 한 냄비 푹~무르게 김치찌개를 끓이고, 구수한 멸치 다시에 콩나물 국 끓여 남편 아침을 차려주고, 냄비 뚜껑을 열면서 훅하고 올라오는 냄새는 있었지만, 분명 난 금식 내내 별반 음식 냄새를 맡았던 기억이 없다. 음식냄새가 코를 자극해서 더 배가 고프고 유혹이 생기지도 않았었다. 먹고 난 후에도 그 냄새가 진동하는 김치찌개의 냄새가 자극이 안 되었다는 게 차려주면서도 신기했다.
물 한 모금이 소중했다. 먹다가 버리기도 일쑤고, 그까짓 별거 아니게 취급되었던 물. 마치 말라서 붙어버릴 것 같은 식도와 위를 적셔주고, 또 채워주었던 물. 투명하게 담아내는 물 한 컵을 이제는 정말 귀하게 마신다.

기뻤다. 처음 시도해보는 것을 성공했다는 기쁨과 더불어, 이렇게 나를 올려드릴 수 있겠구나 하는 가능성이 기쁨을 주었다. 음식을 탐한데 대한 반성이 왔다. 너무 좋아하는 탓에 삶에서의 아주 높은 가치로 자리매김 해놓은 ‘먹는 것’에 대해 이렇게 탐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아침에 사십년을 넘게 좋아해오던 것을 버리기가 쉽진 않겠지만 최소한 ‘탐’하는 자세는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을 먹고 나니 몸무게가 1kg 원상복구 되었고, 나름 홀쭉한 배로 저녁 벨리댄스도 갔다 오고, 모든 일상이 원래대로 되돌아왔지만, 분명 내 안에서는 많은 것이 돌아가고 변화했던 시간들이었다고 확신한다. 이렇게 한 발 내딛는 내 모습을 주님은 잔잔한 미소로 기쁘게 바라봐 주실 것이고, 눈을 땅에 내리꽂고 헤매고 있을 때, 내 얼굴을 주님을 향해 돌려주시며 내 손을 잡아 일으키실 것을 믿는다. 감사합니다~~ 주님~~

그날 저녁 전화 한 통이 왔다. 이벤트 응모에 당첨이 되었다는 전화였다.
보고 싶었던 뮤지컬 티켓이 당첨된 것이다. 그것도 로얄석 9만원짜리
티켓 두장이. 으아아~~ 소리지르는 나에게, 작은아들이 말했다.
“엄마 금식했다고 하나님이 선물 주셨나봐~!”
그랬나보다, 그랬나보다...주님... 따블로 감사해요... 알라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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