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고 행복한 가정들이 만드는
더 좋은 사회 더 좋은 세상
지나버린 세월들을 씻기며
글 심영순(스태프)
6월 어느 날 남부 어머니학교를 섬기시는 이 권사님께서 “청주를 열한번 정도 내려가야 하는데 같이 청주여자 교도소를 섬길 수 있겠느냐”며 전화를 하셨다.
남부 5기 어머니학교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을 때라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 교도소’라는 생소한 단어에 선듯 승낙하고 나니 어떤 마음으로 섬겨야 할지 막막하였다.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보여주는 대로만 생각하고 섬기자는 마음으로 청주로 향하였다. 아침 일찍 우리는 두 대의 차로 나누어 타고 누가 먼저 청주에 도착할지 경쟁이라도 하듯 지도를 맞추어 보며 신나게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러나 약속 시간이 다 지나도록 헤매면서 청주가 결코 가까운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주변을 빙빙 돌다가 개울 옆에 널찍한 마당을 끼고 있는 중부 명성교회를 찾고 보니 얼마나 반갑던지. 청주팀의 따뜻한 환대 속에서 우리는 겸손과 순종으로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을 기대하며 한 달여의 준비 모임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햇볕이 내리쬐는 어느 여름날 오후, 교도관의 안내를 따라 숨소리도 죽인 채 강당 안으로 들어가서 그 동안 기도했던 지원자들의 이름을 떠올리며, 수줍은 듯 들어서는 지원자들을 찬양으로 맞이하였다.
“우리를 보니 무슨 생각이 들어요?”
다짜고짜 묻는 그 마음도, 나를 보던 순간 무작정 울던 그 마음도, “왜 울고 지랄이야”하며 눈 흘기던 그 마음도, 서로 서로 눈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그 마음도 ‘제가 어머니입니다’란 고백 앞에서 긴 흐느낌이 되었다. ‘어머니’그랬다. 우리는 어머니로서 그렇게 처음 만났다.
첫날 우리 조는 청주 팀이 집에서 애써 구어 온 빵도 다 먹지 못하고 차도 별로 마시지 않고 준비한 다과도 남겨 둔 채 일어섰지만 만남이 더해질수록 오히려 나에게 먹을 것을 권하기도 하며 빽빽이 적어 온 과제물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남편과 자녀들에게 부모님에게 쓰지만 편지 받을 이 없어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쓰며 눈물짓는 그들 모습에서 왜 주님이 갇힌 자들에게 재 대신 화관을 씌워 주시겠다고 하셨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우리 중 누군가가 그들은 드러난 죄인이고 우리는 드러나지 않은 죄인이라고 했다.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지원자들의 사연과 주변 환경과 후회의 눈물 가운데, 나는 그들은 자신이 죄인인줄 아는 자들이고 나는 모르는 자라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순간순간 입술로 나는 죄인임을 고백하지만 나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자유를 위한 의례처럼 자백하면서도 내 공을 세울 때가 어찌 그리 많은지. 당연하게 여기는 나의 모든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 곳을 다녀올 때마다 새롭게 다가왔다. 피곤하다고 짜증내는 남편도, 공부도 않고 TV보는 고3딸도, 늘 먹는 타령만 하는 초4 아들도, 그저 내 곁에서 만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했다. 청주로 가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 영혼들을 안타까워하는 우리의 마음이 쌓여 갔고 ‘슬픔 대신 희락을 주실 분은 정말 하나님 밖에 없다’ 고 고백하며 그 이름 하나 하나에 우리의 눈물도 쌓여 갔다.
마지막 날 곳곳에서 지원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그들의 상황을 듣고 기도만 하던 중보자들이 청주로 와서 옥합을 깨어 주님의 발을 씻기던 마리아처럼 냄새나는 그들의 발을 정성껏 씻겼다. 아니, 그들이 발을 씻긴 것이 아니라 그들의 슬픔과 부끄러움과 지나버린 세월들을 씻겼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천사 같은 그들의 섬김과 눈물이 지원자들을 애통하게 하였고 나 또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눈물을 그 곳에서 보게 되었다. 어떤지 보러 왔다며 머리 아프다고 나가시던 분이 ‘정말 하나님을 믿고 싶다’는 고백을 할 때 이런 저런 이유로 하나님을 밀어 내던 분들이 말없는 섬김을 통해 그 마음이 열려지는 것들을 보며 “주님. 정말 대단하시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 말 밖에 할 것이 없었다.
서울로 떠나는 차까지 달려와 갓 삶은 옥수수를 내밀며 우리의 허기진 배와 마음을 채워주신 청주 중부명성교회 사모님. 뒤돌아보면 있을 자리에 어김없이 서 계시던 청주의 편지팀 자매님들. 전근간지 1년 만에 기적처럼 청주로 온 것이 순전히 어머니학교 때문이라며 호탕하게 웃으시던 소장님. 모두가 내게는 귀한 만남이었고 특별한 기쁨이었다.
긴 여행이라도 다녀온 듯 모든 일정을 마치고 마침내 남서울교회에 다다랐지만 우리 모두는 “아, 우리가 꿈을 꾸었나 봐. 그래, 꿈이었어.”하며 발을 떼지 못했다.
청주 갈 적마다 퍼 붇던 비도 그치고 가을처럼 청명한 날씨는 ‘그래, 너희들 참 수고 많았구나.’하는 하나님의 위로 같았다. 지금도 그 곳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우리 조 식구 중에 두 명 쯤은 가족에게로 돌아갔을 텐데 가족들과 잘 지내고 있는지?
면회 올 사람은 없지만 여전히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그 자매님은 건강하신지?
아들을 끔찍이 챙기던 그 자매는 아들과 연락은 잘 하고 있는지?
그 곳에서 그 아픔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서 정말 행복하고 고백하시던 그 자매님은 여전하신지 모두들 그 남은 시간들을 어떻게 견디시는지...
금요일이 싫다던 (우리 모임이 목요일에 있었다) 그들의 고백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위로가 그들 삶 가운데 새 힘이 되길 소망하며 청주의 그 여름을 소중히 꺼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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