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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있는 모습 그대로 오시오~

작성자
백승혜
작성일
11-11-15
조회수
1,107

있는 모습 그대로 오시오~

글 백승혜(멜번 1기 지원자)

34세의 노처녀의 삶을 정리하고 시작한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강하디 강한 나의 자아는 같이 살면서 드러나는 남편의 생활 방식과 사고방식에 날카로운 비판과 책망을 퍼붓고, 더 나아가 시댁 문화까지 비판 했다. 남편의 말 한마디, 선택한 단어, 표현 방식까지 비판하고 무시했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제주도 서귀포를 갔었는데 여행길에도 사소한 일로 다투고 그날은 잠도 오지 않아 새벽 3시가 다 되도록 창밖의 가로등 불빛을 내려다보며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잘못된 결혼을 했다는 후회와 서글픔에서였다. 그때 ‘철환이(남편)에 관한 모든 것을 믿어라. 그리고 그 뒤 나 여호와를 믿어라’라는 음성이 들렸다.
그 음성을 듣고 나서도 나의 삶은 엉망이었다. 나는 음성을 무시한 채 남편과 계속 투쟁을 했고 기도도 할 수 없었다. ‘남편을 믿으라’는 주님의 음성은 무리한 말씀이라 생각했다. 나는 남편이나 시어머니의 서운한 말들을 마음에 쌓아두었다가 폭발시켰고, 남편은 별일도 아닌데 폭발해 숨막히게 하는 나를 질려했다. 나는 밥 먹듯이 헤어지자고 말했고 당신은 구제불능이라고 저주했다.
그때까지 난 그것이 나의 부모로부터 대물림되고 있는 쓴뿌리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었다. 이민을 결심하고 9개월 된 재형이를 데리고 호주로 오게 되었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도 또 환경이 바뀌면 우리의 삶도 나아질 거라는 기대에서였다. 하지만 평생 피아노만 알고 산 내가 영주권을 위하여 미용학교를 다니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계획하지 않았던 둘째 아이까지 덜컥 임신되어 3주 휴가 내어 아이를 낳고, 학교 화장실에서 기계 들고 다니며 젖을 짜고, 밖에 줄서있던 학생들은 `‘쉬~익 쉬~익’` 나는 소리에 무슨 일인가 수근 대었다. 지쳐서 집에 오면 남편역시 아기들과 씨름하고 지친 얼굴로 짜증이 가득했다. 서로가 위로 받기만을 원했고 위로를 하진 못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우리는 풀 곳도 없이 서로에게 퍼부어 댔고, 엉망이 되어 버린 나의 삶이 모두 남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난 이 삶을 정리하고 남편과 헤어져야겠다고 결심했다.
2006년 8월 즈음… 그때도 무슨 일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남편과 며칠째 말을 안하고 살던 어느날, 식탁에 앉아 `한인 교민 주간지`를 보고 있는데 분홍색의 화사한 `어머니학교`의 광고가 보였다. 서울에서 온누리교회를 다녔던지라 `두란노 어머니학교라는 것이 반가웠고 헤어져서 아이들을 키우려면 강하고 현명한 어머니가 되는 법을 어머니학교에서 배워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한 가지 하나님께 이혼을 허락받고 싶었다.
첫날 조 배치를 받고 앉았는데 찬양이 흐르고 있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오시오.`’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하나님께서 내 모습을 다 보고 계셨구나, 나의 이 엉망의 삶을 다 알고 계시는 구나, 내가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무릎 꿇기를 아파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계시는 구나. 오래전 인격적으로 다가오신 하나님, 말씀을 보고 듣는 것으로만 즐기고 하나도 행함으로 적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남편을 믿고 세우는 일부터 시작했다. 의심이 많고 늘 남편보다는 내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나는 남편의 의견을 늘 못 미더워 했는데 어머니학교 후 결단하고 무조건 남편 뜻에 따르니 항상 예상 밖의 좋은 결과만 있었다. 물론 ‘저는 남편 뜻에 따르겠으니 하나님이 책임져 주세요’라는 기도와 함께였다. 때로는 시험에 들어 다투기도 하지만 금방 화해하게 되었다. 이번 간증문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내가 그동안 이토록 처절하게 싸우고 남편을 저주하고 분노했던 것이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열등감에서부터라는 것이다.

나의 어머니가 가정에서 아버지를 바로 세우지 못하고 나의 교육에 과욕으로 집착하신 것이 나를 상대적으로 나보다 월등히 경제적으로 부유한 아이들 속에서 주눅 들어 사춘기를 보내게 했고 아버지가 바로 엄마와 우리 자매를 어렵게 만드는 장본인이라고 믿고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 난 남편을 온전히 믿기가 어려웠고 이 남자 때문에 내 인생이 어려워질까봐 두려웠고 혹 다투다가 나의 열등감이 건드려 질 때는 분노로 폭발한 것이었다.
성인이 되고 또 아버지와는 돌아가실 즈음하여 잘 화해했고 이제는 안정되어 아무 문제없이 잘 산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잊고 있던 내 안 깊은 곳에 남아있던 쓴 뿌리는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나의 가정을 깨려는 도구로 쓰여지는 것이었다.
이번 간증을 통하여 완전히 내 안에 있는 쓴 뿌리를 드러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소망하기는 나를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께서 내가 온전해 질 때까지 계속적으로 도와주실 것을 믿고, 또 나를 통하여 우리 가정과 이제 막 믿음생활을 시작하신 시부모님께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이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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