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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청소년의 나를 만나다

작성자
임은경
작성일
15-02-27
조회수
650

청소년의
나를 만나다

글 / 임은경(본부 15기)


4월 말부터 10주간 청소년 프로그램 교육으로 함께 생각을 나누었던 자매들과 7월18일 한 달 만에 다시 모였다.실제 프로그램을 펼칠 때 더 보완해야 할 것과 부족한 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실습 모임이었다.

<수업>
“아이들과 함께 수업할 때 튀는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훈육해야 할까요? 공감해야 할까요?” 일방적으로 처벌을 통한 훈육을 할 것인가? 아이들의 입장이 되어 공감을 통한 훈육을 할 것인가?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신다. 이 시간은 내가 학생의 입장 되어 대답하는 시간이다. 이 질문 전에 나는 한 번도 못 해 보았던 “하기 싫어요.” “왜요? 그러면 안 되나요?” 소리 지르고 책상을 치며 돌아다니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는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어졌다. 선생님께서 여느 때와 달리 불량한 나의 태도를 주목하시며 나를 바라보신다.

청소년기 나는 싫은 사람들에게 1주일이건 한 달이건 말을 안 하며 스스로 마음의 벽을 쳐놓고 상대방을 철저하게 응징하곤 했다. 나는 싫으면 입이 닫히고 마음의 문이 철커덕 철커덕 내려온다. 혼자이고 싶을 때, 슬플 때, 아플 때, 수 없이 방문해 온 마음의 동굴이 있었다. 그 동굴에는 나의 청소년기의 억울함, 미움, 다툼, 비밀로 남겨놓고 싶은, 상처가 숨겨져 있는 나만의 공간이자 쉼터인 곳이다. 어느새 나는 그 동굴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뭐지? 내가 왜 이런 말을 시작한 거야? 괜히 시작 했다….’이런 생각이 들 때 선생님께서 질문하신다. “그럼 거기로 조금만 더 들어 가도 될까요?” 선생님께서는 청소년기부터 철통같이 지키던 나의 침묵, 동굴에 구체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아직 청소년기의 나와 지금의 나와의 사이에는 거리가 남아 있다. 선생님에게도 나에게도 청소년기 그 은경이는 3인칭이다. 50에 되돌아보는 청소년기 나를 바라보는데 마치 어제 일같이 생생하다. ‘그렇지, 그럴 수도 있지, 맞아, 그럴 만 했어….’

이야기는 목사님 사택에서 부터 시작된다. 성도들의 시선은 조금씩 다르지만 나에게 목사님 사택은 성도들의 필요에 따라 물건을 빌려주거나, 전달하거나, 맡아 주거나, 무언가 궁금한 것을 답해주는 피곤한 심부름센터이다. 난 그들의 영원한 “을”이고, 거절하지 말아야 하고 거역하지 말아야 한다고 훈련된 심부름센터 직원이었다. 그 위치에 내 방이 있어야 하는 것 자체가 싫었다.

선생님이 다시 질문하셨다. “그럼 그 공간에 좀 더 깊이 들어가도 될까요? 괜찮지요?” 내 눈을 보며 확인하신다.
청소년기, 나는 밤마다 가위에 눌렸다. 벽시계 소리가 커서 잘 때는 문 밖에 내놓아야 했다. 만약 잊어버리고 그냥 잠들어 시계소리가 들리면 반드시 가위에 눌린다. 가위에 눌리는 이유는 하도 많아 일관성 없다. 깔린 이불이 반듯하지 않아서, 늘 입던 잠옷을 입지 않아서, 조금 늦게 잠들어서, 가위에 시달리겠다고 생각하여서, 등등…. 내 가위눌림의 증상은 영과 육이 분리 되어 누군가에게 소리쳐도 목소리도 안 나오는 또 다른 내가 자고 있는 것 같은 상황이다. 그때 손가락 하나 움직여서 들어올리기만 하면 그 답답함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할 수 없다. 거기서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일이 세상을 들어 올리는 것보다 힘들었다. 시계를 밖에 두고 잠옷을 입고 이불도 잘 깔아서 가위 눌림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잠드는 날엔 또 다른 모습으로 잠에서 깨곤 했다. 기고 또 쫓기며 애를 쓰다 힘에 부쳐서 깨는 꿈이었다. 내일까지 악보를 외워야 하는데 나만 모르고 있다가 오늘에서야 그 악보를 받고 엉망으로 연주하고 뭔가 진행되고 있는 낯선 곳에서 분위기를 혼자 몰라서 끙끙 거리며 비참 해져서 마음 졸이다가 깼다. 휴…. 현실. 그건 실제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밤새 꿈에서 시달린 나는 답답한 기분으로 아침을 맞이하곤 했다.

선생님이 또 다시 요청하신다. “그 공간에 좀 더 깊이 들어가 보아도 될까요?” 아, 이제는 그만 들어가고 싶다고 머리를 도리질 했다. 그러는 어느새 몇 가지 단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목사인 아버지께서 멱살을 잡히시는 모습, 어두운 곳에 쪼그리고 흐느껴 우시는 엄마, 금식하고 23일 만에 집으로 오신 해골 같은 모습의 아버지에게 다가 갈 수없는 무서움. 고등학생 아들이 담배 피운다고 공격하며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던 교인들의 손가락들,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 안간 힘을 쓰며 자라왔던 어린 나…. 그리고 그럼에도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던 무력함…. 철커덩 철커덩 또 다른 마음의 문이 닫히는 것 같다. 조금 후 딱딱하게 얼어붙은 나를 보시던 선생님께선 바로 방향을 바꾸며 자매들에게 요청 하신다.
“청소년기 은경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우리가 그동안 배워온 공감 표현을 사용하여 해 주어 보세요.”

자매님들이 어린 은경이를 이해하면서 반응해 준다. “은경아, 참 힘들었겠다.”, “은경아, 참 외로웠었구나“ ,”은경아, 어떻게 그렇게 성실하게 잘 했니.”, “은경아, 잘 견디었다”, “은경아, 나라면 그렇게 못 했을 것 같아.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은경아, 나는 너 한테 '괜찮다' 라고 말해 주고 싶어.” 은경아 괜찮아 라는 진심어린 소리가 들렸다. 장면 장면들에 있었던 은경이에 대한 공감적 반응을 넘어 “괜찮아” 라는 말이 마음 깊숙이 파고든다. 설움이 복받쳐 올라 흐느낌에 고개 숙여 졌다. 참 듣고 싶었나 보다. 정말 괜찮고 싶었나 보다. 지금은 3인칭의 내가 아닌 50의 나인데 덜 덜 떨리고 아프다.

내가 그렇게 숨기려는 상처에는 이렇듯 입만 다물면 모르는 극히 개인적인 아픔이내재되어 있었다. 그 다문 입의 세월만큼 깊게 쌓여 있는 분노도 숨겨져 있었다. 드러내기 싫었던 이유는 기억하면 할수록 드러나는 내면의 상처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앙금 같아서 기억하면 스몰스몰 올라와 해결 되지 못한 채로 마음을 혼탁하게 흐려놓고 있었다. ‘괜찮아.’ 그 한마디가 필요했던 나의 청소년기. 깊이 묻어둔 상처가 말로, 따뜻하게 받아 들여 지는 눈길로, 진심어린 위로의 깊은 허그로 치유되어가는 나를 보며 공감의 힘과 위력을 느꼈다.

“해 아래 한 가지 불행한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라” (전도서6:1)
하나님께서는 나를 무겁게 했던 이모든 것을 손 내밀어 함께 체휼 하시며 풀어 주시려고 청소년 프로그램에 참여 시키셨나 보다, 마음이 가볍다…. 나는 지금 괜찮다…. 괜찮아 지고 있는 중이다….
청소년기가 회복되어 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본 글은 청소년 프로젝트 실습 기간 중에 진실하게 자신을 오픈해 주신 임은경님과 같은 마음으로 실습에 참여 했던 자매님들의 수고로 이루어진 작업 과정을 소개한 글입니다. 다시 기고글로 정리하여 오픈하여 나누어 주신 임은경 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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