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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섬김의 가운데 멈추어 서서

작성자
양정란
작성일
11-11-04
조회수
1,003

섬김의 가운데 멈추어 서서

글 양정란(의정부)  

이야기 하나
3주차 스태프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 피곤하다. 날씨까지 흐려 ‘바로 한의원에 들를까?’ 하다 잠시 후 퇴근할 남편이 생각나 바로 주방으로 향한다. 한참 먹는 고 3 아들은 출출한지 냉장고를 뒤적뒤적. 저녁 반찬 만들다 말고 바로 김치부침개를 만들어 준다. 저녁 6시경 퇴근한 남편은 “당신 스태프 미팅 다녀와 피곤한데 그냥 라면이나 먹지.” “ 아냐. 피곤해 누워 있으면 더 못할 것 같아서 오자마자 저녁 준비부터 했어요.” “ 당신 힘든데 그냥 대충먹지.” 잠시 후. “아니. 언제 부침개까지 만들었어? 비 오는 날은 정말 딱-인-데. 역-시 당신이야.” 비 오는 날 유난히 더 맛있는 부침개는 입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행복하게 만든다.
섬김의 자리에선 은혜와 행복 충만으로 밥을 안 먹어도 좋으나 집으로 돌아온 순간, 밥을 해서 챙겨야 할 가족이 있다는 현실과 만나면 약간 짜증도 난다. 풀린 긴장에 기대어 ‘피곤’이란 단어로 모든 걸 합리화시키면, 식탁의 초라함과 더불어 행복과 한 발 더 떨어진 우리 가족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섬기고 돌아온 날은 물리치료를 받고 온 환자마냥 너무 힘들어 대충 먹는 버릇이 생긴 탓에, 내가 외출한 날은 남편으로부터 ‘대충’이란 단어를 듣게 되었나 보다(그 때는 그게 당연한 일로 여겨졌지).




이야기 둘
5세 자녀가 원형 탈모증에 걸려 전국방방곡곡을 찾아다닌 다닌 목사님 한 분을 알고 있다. 자녀 때문에 의사와 상담하면 “직업이 혹시 교수나 목사님 아닌가요?”하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한다. 학교나 교회에서 보는 아빠와 가정에서 보이는 아빠의 이중적 모습에 괴리감이 생긴 아이들에게서 여러 증세가 나타난다는 사례를 듣고는 본인을 더 돌아본다는 목사님의 간증을 듣고 어머니 학교를 섬기는 나에게서 그런 모습이 드러나지 않을까 나를 돌아보게 된다.
지원자 시절을 지나 섬김의 나날이 더해지면서 나의 회복은 상향곡선을 그리지만, 가족들의 시간이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면야 과연 누구를 위한 회복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섬김을 시작하기 전 가족들의 식탁을 더 의식하며 더 특별난 요리를 준비하게 된다. 군인가족 시절엔 갑자기 쳐들어오는(정말 적절한 표현) 후배 장교들로 냉장고가 꽉 찼다면, 이제는 나의 부재에도 언제나 일품요리가 가능한 부재료와 음식들로 채워둔다. 오히려 더 잘 먹을 수 있도록. 가정 전문 경영인이란 이기복 교수님의 강의를 곰삭히면서 나의 역할도 분류해본다. 주방에서는 요리사로, 안방에서 전문경영인으로, 아이 방에서는 공부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성경통독과 독서로 자녀들 신앙 상담과 비전을 제시하며, CA수업과 과외 강의를 해야 하는, 하루를 25시로 살아야 하는 일인 다역의 나. 이렇듯 바쁜 삶에 많은 사람들은 나를 ‘밥도 못하는 여자’로 생각한다. 봄이면 오이피클과 마늘·양파피클, 여름에는 고추장아찌와 콩잎장아찌. 가을이 되면 토란 대, 무말랭이 등 여러 건조식품을, 겨울이면 서너 가지 김장과 더불어 무청이 베란다에 널려있고. 가족들이 먹고 싶다면야 장금이처럼 한번에 서너 가지 일품요리도 뚝딱하니,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은 나에게 뒤통수 맞았단 이야기를 남긴다.

이야기 셋
마인드맵 강의를 할 때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꼭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 지금 해야 하는 일, 나중에 해도 되는 일, 이런 분류로 시간표 작성을 시키면서 삶의 방향과 시간의 청지기 이야기를 많이 한다. 동그라미 계획표에 익숙한 사람들은 처음엔 거부감을 표시하나, 적용 후 문자와 전화로 많은 감사를 받는다. 섬김의 중간에 잠시 멈추어 나를 돌아보는 나 역시 내 삶, 내 가정에 더 구체적으로 적용한다. 바쁠수록 돌아가는 여유가 필요하듯, 내가 해야 할 일이 많을수록 가정에 더 철저히 해야 함이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로운 여인이 아닐까?
누군가는 “그렇게 살면 얼마나 피곤한데 대충 살지…” 이야기한다. 그러나 대충 살아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나의 삶. 하나님이 나를 지나가는 행인 1, 2로 살라며 창조하신 게 아닐진대, 세상에 최초로 만든 제도가 교회 이전 가정임이 창세기에 나타나 있는데,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헌신한다면서 내 가족은 뒤로 밀려나고 빚진 마음을 느낀다면 우리 아버지는 뭐라고 하실까.
가족 공동체가 이탈되고 있는 요즈음 섬김을 통해 거듭난 나의 모습은 어떤가? 남편과 자녀 눈에 보이는 어머니 학교는 어떤 모습인가? 가족 공동체에 덕이 되는 섬김인지, 해가 되는 섬김인지, 또한 그들이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혹시 외로움과 소외를 친구삼고 있지는 않은지. 사춘기 자녀와 사추기 남편 마음 언저리가 비어있다면 나의 직무유기는 아닐는지…(修身齊家 治國平天下란 비성경적 어휘가 정말 성경적 내용인듯 하다).

이야기 넷
1~2월 2달간 성경 통독을 마무리하면서 20여 권의 책을 읽었나 보다. “당신은 정말 대단해. 2월부터 스태프로 시작한다면서 좀 쉬지.” “아니. 시작되면 느긋하게 책 읽을 시간이 없으니 지금 읽어야 해.” 평소 꾸준한 성경 통독과 시간의 청지기를 주장하나 따라오지 않는 가족들에게 강요보다 집중적 독서삼매경의 모습을 드러낸다. 남편과 아이들은 저절로 책을 잡고 토론으로 들어가니 세대간 이해의 폭도 증진되어 진다. 이걸 공유하는 행복(공감)이라 하나 보다. 토론의 끝자락에 아들은 “엄마, 아빠도 아버지 학교 스태프 하시게 하면 안돼요?” “왜?” “ 엄마가 스태프 하니 잔소리도 더 안하고, 더 맛있는 것 해주고, 더 좋게 이야기해주고 기다려주니까.”
내 자녀, 내 남편이 행복하면 엄마인 내가, 아내인 내가 미소짓듯 내 가정의 행복지수가 올라갈 때 우리의 아버지는 나를 바라보며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하시면서 “내가 너로 인하여 기뻐하노라.” 함박웃음을 보내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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